[盧 前대통령 고백] '심판' 아닌 '평가' '빌렸다' 아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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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사과문 표현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 표현들이 눈에 띈다. "검찰에서 응분의 법적 평가를 받겠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표현에서는 '응분'이라는 단어의 뒤에 법적 심판을 받겠다거나 죄값을 치르겠다는 말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평가'라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를 골라 썼다. '사과문'의 성격에도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우선 노 전 대통령이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수 있다. 그는 사과문에서 '면목이 없다','사과 드립니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불법을 저질렀다'고 인정하는 내용은 일절 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이 권 여사의 수뢰가 불법인지,합법인지 여부 자체를 아직 명확히 결론내리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사과문을 통해 도덕성을 확보하면서도 법적인 책임은 최대한 면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자신과 부인에 대한 직접적인 검찰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듯한 표현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또 박 회장에게서 '돈을 빌렸다'가 아니라 '돈을 받아서 사용했다'고 표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정치자금 사건에서 정치인들이 통상 "돈을 빌려 사용한 것이지 뇌물은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서는 수수 자체가 '합법'일 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한 어구 선택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 '받았다'는 표현이 '수수했다'와 '빌렸다'라는 두가지 의미 모두로 해석할 수도 있어 향후 검찰 수사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단어를 선택하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빌렸다'고 거짓말을 할 경우 나중에 법적 책임은 물론 도덕성에도 큰 흠집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