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탄소세 내라" vs 친디아 "그린보호주의 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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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비료 등 CO₂배출 많은 수입품에 과세 추진무역과 노동보호주의에 이어 이번에는 '그린보호주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환경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개발도상국 수입물품에 탄소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역·노동 이어 그린장벽 새 이슈로 부상
이에 대해 중국과 인도 등 친디아가 그린보호주의 장벽을 쌓으려 한다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질서 재편을 놓고 벌이는 선진국과 신흥국 간 파워 싸움이 달러 기축통화 논쟁에서 그린보호주의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8일까지 독일 본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실무 관계자급 회의에 참석한 샴 사란 인도 기후협상 대표는"선진국들이 그린 라벨을 붙인 보호주의에 나서고 있다"며 "기후변화 회의에 선진국들이 공정 경쟁 개념을 갖고 오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과 프랑스 등이 자국 기업이 탄소 배출 규제를 하지 않는 나라의 기업들과 불공정 경쟁을 해야 할 상황이라며 철강 시멘트 비료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환경오염 업종 제품을 해당국에서 수입할 때 탄소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 정면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도 인도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셰전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장관)은 최근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보호무역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셰 주임은 "선진국들은 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를 규제하겠다는 것은 보호주의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특히 그린보호주의가 무역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쑤웨이 중국 기후협상 대표는 "탄소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무역 전쟁을 촉발할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인도와 중국의 대미 수출은 지난해 각각 3378억달러와 210억달러에 달했다.
친디아의 반발에도 미국과 유럽은 탄소세 부과를 강행할 움직임이다. 미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탄소세 부과 권한을 주는 법안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은 철강과 시멘트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미 기업이 싼 수입제품과 경쟁하는 것을 돕기 위해 우선 보조금을 지급하고,그래도 생기는 가격 차이에 대해서는 수입제품에 탄소세를 부과한다는 게 골자다.
스티븐 추 미 에너지장관은 앞서 지난 3월 "공정 경쟁을 위해 탄소 배출 규제를 하지 않는 나라의 물품을 수입할 때 관세에 벌과금을 얹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프랑스 기업들은 이미 탄소 배출 규제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환경 규제 수준이 낮은 나라의 제품을 수입할 때 관세를 부과하는 게 유럽의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세계를 폐허로 만드는 환경 덤핑을 수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디아와 선진국 간 그린보호주의 공방은 2012년 종료되는 교토의정서 이후의 새 기후협약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도 있다는 지적이다. 친디아 등 개도국들은 선진국들이 지난 2세기에 걸쳐 환경을 착취하며 부를 쌓아왔다며 미국 등 선진국이 분명한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제시한 뒤에 감축 목표를 잡겠다는 입장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이 때문에 이번 UNFCCC 실무 관계자급 회의는 구체적인 합의안을 내놓지 못한 채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번 회의에선 △선진국과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 수준 △온실가스 지정 화학물질 범위 확대 △개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안 도입을 위한 지원 규모 등이 논의됐다. UNFCCC 측은 오는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릴 제15차 당사국총회에서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1990년 수준의 25~40% 감축해 기온 상승폭을 2도 이내로 묶는다는 내용의 새 기후변화협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광진/이미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