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전쟁이란 결국 錢爭…자유는 너무 비쌌다

자유의 대가 로버트 D. 호매츠 지음|조규정 옮김|미래사|500쪽|1만5000원
전쟁을 군사적 행위로만 생각한다면 이는 대단히 순진한 발상이다. 전쟁은 돈이 좌우하는 고도의 경제 행위다. 고대의 부국강병은 곧 다수의 상비군과 이를 유지하는 데 드는 재정의 문제를 아우른 표현이었고,근세 왕정의 붕괴와 부르주아지의 대두도 전쟁비용 조달을 둘러싼 채권 채무 문제를 떠나 생각할 수 없다.

총력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전쟁이란 결국 돈의 문제였고,한 나라가 전비를 어떻게 조달하는가 하는 문제는 전쟁의 방식과 승패까지 결정짓는 요인이었다. 200여년을 갓 넘긴 신생 미국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독립을 위한 전쟁에서부터 남북전쟁,식민지전쟁은 물론이고 베트남전쟁과 아프간 · 이라크전쟁까지 세계인들이 굵직굵직하다고 생각하는 전쟁에는 대개 미국이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숱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미국은 재정과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고 동원해 왔을까? 미국 전쟁사의 재정 측면을 살펴보는 것이 이 책 《자유의 대가》의 전반부다.

1790년 1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해밀턴은 국민들을 향해 독립전쟁을 위해 미국은 엄청난 부채를 졌으며 이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신용과 국가안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전쟁부채 상환이 곧 '자유의 대가'라면서 미국 국민들에게 이를 갚아야 할 의무가 있음을 설득했다. 자유의 대가를 관리하고 상환하는 능력은 미국의 역사에서 군사는 물론 조세나 재정분야에 혁신을 일으킨 요인이었다. 전시행정부가 전비 조달을 위해 짜낸 갖가지 세수증대 방안이나 채권 문제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효율적인 재정 운용의 기틀이 됐다. 더구나 전시의 긴박한 상황은 아무리 인기없는 정책이라도 평시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국민의 지지까지 보장해줬다.

그러나 2001년 9 · 11테러 이후 모든 것이 과거와 선을 긋기 시작했다. 전비의 규모와 조달이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대 테러전쟁은 장기전일 뿐만 아니라 공격보다 방어하는 쪽의 비용 부담이 엄청나게 큰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한다.

예산의 우선 순위만 해도 날로 늘어나는 사회보장비용을 제치고 무조건 군사재정만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1990년대 이후 마구잡이 감세정책이 유행하고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 문제가 유일강대국의 안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상황까지 왔다. 이 책의 후반부는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한 미국의 전비조달 문제를 다루면서 '자유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누가 무엇을 희생해야 할 것인가를 말한다.

해답은 거칠지만 간단하다. 국가안보는 군사력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재정에 달렸다. 독립의 아버지들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시 지도자들이 고민한 것은 건강한 재정을 만들기 위한 형평성의 원칙이었다는 것이다.

더 많이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의 부담을 늘리고 국가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을 덜 느끼는 사람에게는 그 수혜를 줄이면서 재정을 추스르자는 제안이다. 좋은 실례가 예산개혁의 일환으로 민주당이 도입한 부담가능한도(PAYGO) 조항이다. 저자의 돋보이는 제안은 국방예산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법정비용인 사회보장예산이 엄격한 구속 아래 있듯이 국방예산의 비효율을 감시하는 것을 안보를 해치거나 비애국적인 행위로 몰아붙이는 군산복합체의 여론몰이에 경고를 주고 있다. 무절제한 지출은 곧 국가재정에 부담을 줌으로써 국가안보를 허무는 행위인 것이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