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흥망의 '다윈 코드'] (4) 우회전략의 힘‥산업혁명·도요타가 그랬듯이…변화는 변방에서 시작된다

혼란기는 변방이 중심부를 공략할 절호의 기회다
마오쩌둥(毛澤東)과 윈스턴 처칠,미국 해병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변방을 먼저 공략해 승리했다'는 것이다.

1930년대 마오쩌둥은 농촌을 거점으로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 초기,공산당 내부의 '28인 볼셰비키'라고 불리던 엘리트 조직은 가난하고 척박한 중국의 내륙을 혁명 근거지로 해야 한다는 마오쩌둥의 생각에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중국의 가장 큰 인구집단인 농민계층을 근간으로 혁명전선을 구축하지 않으면 중국 통일이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마오쩌둥은 적이 근접할 수 없는 중국의 땅 끝 지역을 목적지로 삼고 남서부로 행군해 가는 '대장정'을 선택했다. 가는 곳마다 집회를 열어 혁명의 명분을 알리고 농민들을 규합했다. 대장정을 떠날 때만 해도 미약한 세력이었던 마오쩌둥의 홍군은 결국 농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에 힘입어 1949년 국민당을 쫓아내고 중국의 패권을 장악했다.

# 변방이 무너지면 세력균형도 깨진다

영국 총리였던 처칠은 2차 세계대전에서 직접 독일 본토를 치지 않았다. 대신 북아프리카의 사막전선을 돌파했다. 지중해를 차지하면 독일과 동맹관계였던 이탈리아를 위협할 수 있게 돼 전쟁 전체의 세력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1930년대 말 '사막의 여우' 독일 롬멜 장군의 뛰어난 기동전술에 고전하던 영국군은 1940년부터 신형 기갑 탱크들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접전 끝에 엘알라메인에서 롬멜을 물리치고 승기를 잡았다.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벌인 미국 해병대의 작전도 우회하는 것이었다. 미군은 1945년 일본 본토상륙작전을 수행하기 전에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던 태평양 섬들의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알류샨 열도의 아투를 필두로 마킨,타라와,퀘젤린 제도,사이판 등의 섬들이 차례로 미 해병대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 여세를 몰아 1945년 4월 오키나와를 공격한 미군은 일본군에 무려 15만명의 인명 피해를 입히며 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 혼란기는 변방이 중심을 공략할 기회혼란기는 변방이 중심부를 공략할 절호의 기회다. 변화는 변방에서 시작된다. 식물의 생장점은 줄기의 한 가운데가 아니라 줄기의 끝에,뿌리의 끝에 있다. 사람의 성장판도 뼈의 맨 끝에 존재한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과학발달 수준이 상대적으로 뒤지는 나라였던 18세기 영국이 산업혁명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환경 변화에 자유로이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변방으로 취급받던 면직업이 기계화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영국의 주력 산업은 면직업이 아니라 모직업이었다.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의 수혜를 입고 있던 모직업은 전근대적인 주문생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반면 인도산 면직물에 위협을 느낀 면직업체들은 대량 생산을 위한 방직기 개발을 서둘렀다. 1760년에 '나는 북'이라는 자동화기기가 처음 나왔고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뮬 방직기가 개발돼 대량생산체제의 기틀이 구축됐다. # 위기와 기회는 교차된다

오늘 날 도요타 생산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오노 다이이치 전 도요타 사장도 본사의 혁신 대신 현장의 혁신을 주창했다.

그는 "세상의 변화는 변경이 중심을 파괴하는 데서 시작된다"며 "제조업의 '변경(변방)'이라 할 수 있는 공장이 변해야 회사 전체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했다. 세계 자동차업계를 석권한,그 유명한 도요타의 간판생산방식(JIT:Just In Time)과 통합형 유연생산시스템은 이런 과정을 통해 구축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대기업들도 모조리 변방에서 중심부로 진입하는데 성공한 기업들이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 등은 30년 전만 해도 일본의 도시바나 미쓰비시로부터 저급 기술을 전수받아가며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오던 회사들이었다. 문제는 어렵사리 중심부에 진입한 한국의 주력산업들이 경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세계의 변방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우려가 '샌드위치 위기론'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는 중심과 변방 간의 교체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에게 기회가 왔다는 말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기가 닥쳤다는 것과 동일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