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저의 집'에 대한 예의

함인희
노 前대통령 사과는 가족의 가치 왜곡
식구핑계 권력형 비리 합리화 씁쓸
가족은 누가 뭐라 해도 정치성 짙은 제도다. 실상 가족에 관한 한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보다는,무엇을 말해선 안 되는가를 둘러싼 규범이 더욱 정교하게 발달돼 있다는 주장이 있다. 뿐이랴,가족은 문화적 음모(cultural conspiracy)를 함축하고 있다는 시니컬한 주장도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다.

낭만적 결혼의 시대가 열리기 전,배우자 선택을 결혼 당사자들에게만 맡기기 어려웠던 이유는 결혼이 매우 중차대한 가문 전체의 비즈니스였기 때문이다. 특별히 지배층의 결혼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세력을 극대화하고 경제적 자산을 축적하기 위한 합법적 절차임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평범한 민중들의 결혼 또한 가족전략 차원에서 실리적 이해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경우는 매우 드물었음은 물론이다. 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예전 신분사회에선 조혼(早婚) 풍습이 정교하게 발달하곤 했는데,이유인즉 엄격한 신분질서를 교란시키는 대표적 요인 중 하나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었다 한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과 부부의 연(緣)을 맺는 낭만적 결혼이야말로 전통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 이행해가는 신호탄이었다는 해석은 오늘날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최근 우리네 정치 무대 전면에 가족이 새삼 화두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자니 여간 착잡한 것이 아니다. 일단 화제가 되고 있는 바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홈 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면,가족의 정치성이 전형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전직 대통령의 대(對)국민 사과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등장한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어서 저의 집에서 부탁해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이라는 게다. 여기서 '저의 집'이란 부인을 일컫는 경상도식 표현이란 친절한 해석이 뒤따랐다. 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조카사위가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500만달러에 대해서는 세간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저의 집'사람이 한 일을 두고 머리 숙여 사과하는 전직 대통령을 향해 측은지심이 드는 건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한데 '저의 집' 사람이 '나(당시 대통령)도 모르게 한 일'이니 '난들 어찌하겠느냐'는 뉘앙스를 풍기는 대목에선,대통령 시절 보여주었던 특유의 탁월한 연기력이 연상돼 매우 유감스럽다. 대통령 후보 시절 권양숙 여사 부친의 전력(前歷)이 문제가 되자 "그럼 (장인의 이념 때문에) 부인을 버릴 수 있겠느냐?"며 정면으로 맞서던 때가 오히려 그리워진다. 솔직히 한국 사람들은 너나없이 부인이든 자식이든 가족이 연루되면 슬그머니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상례다. 공(公)과 사(私)를 칼같이 구분하는 서구식 사고방식이나 관행을 때론 동경하면서도 속으론 참으로 인정머리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또한 사실이다. 원래 가족의 제한된 자원을 총동원해 남편이나 자식의 성공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가족 공리주의'가 공고히 뿌리내려온 것이 우리네 아니던가.

그러노라니 늘상 권력 주변엔 친인척 관계를 사칭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전직 대통령 친인척과 아들들이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다종다양의 이권에 개입하는 부조리와 불합리를 반복해오고 있는 셈이다. 가족의 정치성을 전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면 나이브한 생각일 테지만,가족관계를 타고 권력형 범죄가 번성하는 현실만큼은 필히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것이다.

가족의 정치력이 진정 빛을 발하는 순간은 가족 특유의 희생과 헌신,이타주의와 애정이 권력의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들을 위해 발휘되는 순간일 게다. 가족 우산에 기대어 권력형 비리를 합리화하려 함은 '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