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뜨개질

지진으로 무너진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구조된 98세 할머니 마리아 단투오노가 "구조될 때까지 뜨개질을 했다"고 말했다는 소식이다. 초조와 불안을 달래는 데 뜨개질만한 게 없는 걸까. 가수 이미자씨(68) 또한 최근까지 공연장에서 무대에 서기 전 뜨개질을 했다고 밝혔다.

올해로 가수 50년,취입곡만 2069곡에 달하는 이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해온 일 중 자랑하고 칭찬받을 게 있다면'잘 참고 견딘 것'이라고 털어놨다. 스타와 엄마,종부(宗婦)로서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참자 참자"를 주문처럼 외웠다는 것이다. 뜨개질 얘기는 그 와중에 나왔다. 뜨개질이 심신 안정에 좋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혈압을 낮추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뜨개질을 하면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에서 벗어나 요가나 기(氣) 수련을 할 때처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는 것이다(하버드대 의대 허버트 벤슨 박사).

벤슨 박사는 그러면서 요가나 기 수련은 잘못할 경우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반면 뜨개질엔 그런 부작용이 없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할리우드 여배우들 사이엔 뜨개질이 유행이라고도 한다. 사라 제시카 파커,우마 서먼,줄리아 로버츠 등이 뜨개질로 심리적 압박감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할 만큼 두려움과 공포는 사람을 망가뜨린다. 위궤양이 폭음이나 폭식보다 만성적 스트레스에 의해 생긴다는 보고도 그 중의 하나다. 실험 결과 코너에 몰린 쥐는 위 점막이 쉽게 짓무르고 헐더라는 것이다(캐다나 몬트리올대학 한스 세리에 교수).일본의 의사 출신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76)는'둔감력'이란 책에서 천천히 반응하는 자만이 속도를 따라잡는다고 강조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자면 다소 둔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모기에 물려도 긁지 않고 내버려두면 괜찮은 것처럼 비아냥과 비판에 무심해져야 좌절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뜨개질은 단순하지만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한눈 팔면 코가 잘 꿰어지지 않고 한 코라도 빠지면 풀어서 다시 떠야 한다. 힘들수록 너무 신경 곤두세우지 말고 무심한 듯 자신의 능력과 하늘의 도우심을 믿고 견뎌볼 일이다. 꼭 뜨개질이 아니라도 마음을 가라앉힐 걸 찾아내 몰두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