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인터뷰] "같은 원두에서 나오는 수천가지 커피맛, 내 손에 달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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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 식품기술硏 '바리스타' 권효민씨"테이크 아웃 커피에 스틱을 꽂아 드시는 분이 많은데 그러면 품질 좋은 커피를 제대로 맛볼 수 없습니다. 거품 있는 커피를 컵의 뚜껑을 닫은 채 마셔도 거품이 입 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제맛을 느끼기 힘들어요. 뜨거운 커피는 식기 전에,아이스 커피는 얼음이 녹기 전에 가급적 빨리 드시는 게 좋습니다. "
커피머신에서 추출되는 커피 원액을 받아 주의깊게 맛보던 바리스타 권효민씨(30 · 파리바게뜨 식품기술연구소 대리)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국내 주요 바리스타 대회를 석권하고 커피 광고에도 등장했던 그는 "진정한 커피는 영혼으로 마시는 것"이라며 '커피 예찬'을 쉼없이 펼쳐놓는다. 바리스타로 이름을 날리다 제빵 브랜드 파리바게뜨에 합류해 바리스타 커피의 대중화에 나선 그를 만나 바리스타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드라마 등을 통해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낯설지 않은데요. 하지만 정확히 뭘 하는 직업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마디로 커피 전문가 겸 커피 관련 종합 서비스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커피 생두를 로스팅(볶는)부터 커피 원액 추출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기본이죠.여기에 점포관리,원가관리,재고관리 등도 총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관련 분야에서 수십년간 내공을 쌓은 백발 노인들이 바리스타 칭호를 얻을 수 있는 데 비해 국내에선 바리스타 호칭이 좀 남발된 감이 있죠."
▶제 입맛에는 자판기에서 뽑은 밀크커피가 좋은데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어떤 커피를 더 좋아하느냐는 개인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보통 가정에서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는 동결 건조 커피입니다. 반면 바리스타들이 만드는 커피는 생원두를 볶아 분쇄하는 즉시 에스프레소 원액을 추출하는 점이 다르죠.9㎏의 압력으로 원액을 짜낸 다음 그것에 변화를 가미해 여러 가지 커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인스턴트 커피와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 향일 거예요. 싱싱한 원두일수록 휘발성의 구수한 향미가 납니다. 반면 원두가 오래되면 향미가 떨어지고 담배 찌든 것 같은 목질향이 나죠.또 산화가 많이 된 원두는 개기름이 낀 것처럼 오일이 미끈미끈하게 묻어 있는 데 비해 신선한 커피는 오일이 듬성듬성 있어요. 결론적으로 생두의 차이와 로스팅 기술의 차이,추출 기술의 차이가 어우러져 맛의 차이를 냅니다. 바리스타에 따라 쓴맛을 동반하는 강렬한 커피가 나올 수도 있고,구수하면서도 마일드한 커피를 만들 수도 있어요. 취향에 따라 고소하진 않아도 신맛을 낼 수도 있고요. "
▶커피 맛에서 바리스타의 역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나 될까요.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밥맛은 쌀이 결정하듯 어떤 생두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하죠.다음은 로스팅인데 8단계의 로스팅 중 어느 정도로 볶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덜 볶을수록 신맛이,더 볶을수록 쓴맛이 나죠.그 중간에 고소한 맛,감칠맛,쌉싸름한 맛이 있고요. 또 한 커피만으로 맛을 낼지 여러 커피를 블렌딩하는지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지죠.이런 기본 재료가 갖춰지면 바리스타의 추출 기술이 커피맛을 결정합니다. 좋은 재료에 모든 준비가 완벽해도 제대로 원액을 추출하지 못하면 형편없는 커피가 되거든요. 바리스타가 중요한 이유죠."▶그럼 바리스타는 몇 종류의 커피를 만들 수 있나요.
"에스프레소 베이스로 수백,수천 가지 메뉴를 만들 수 있습니다. 파스쿠치 같은 커피 전문점에서 보통 접할 수 있는 커피는 20종 내외지만 음식재료인 두부,고구마,감자 등과 궁합을 이룬 '베리에이션 음료'까지 가능할 정도로 적용 범위가 넓어요. 섭씨 88~92도 사이의 뜨거운 물에 가정 수압의 3배인 9배의 압력을 가해 7~10g의 원두를 짜면 에스프레소 한 잔이 나옵니다. 그 에스프레소의 강렬하면서도 진한 맛을 바탕으로 다양한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어떤 것을 좋은 커피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갓 볶은 신선한 커피를 최단기간에 에스프레소로 추출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통상 국내 커피 전문점들도 볶은 지 3~6개월 지난 원두로 커피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점이 평소 아쉬웠어요. 제가 파리바게뜨에 합류해 제품을 개발하게 된 후로는 평택에서 로스팅한 커피를 7일 이내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지요. "
▶바리스타는 와인 맛을 감별하는 소믈리에처럼 맛의 세세한 차이도 감지합니까.
"기본적인 감별은 하지만 맛을 일일이 구별하긴 사실 힘들어요. 같은 산지라고 해도 해마다 원두의 수분 함량이 달라지기 때문이죠.커피 테스팅 전문가가 따로 있고 로스팅 전문가도 따로 있습니다. 바리스타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원두를 가지고 매장에서 고객에게 최상의 커피를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
▶한국인이 좋아하는 커피맛이 따로 있나요.
"한국 사람들은 커피에서 단맛을 좋아합니다. 캐러멜이나 초코시럽을 이용한 단맛을 선호하죠.단맛을 좋아하면서도 칼로리 적은 것을 많이 찾습니다. "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커피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어떤 것입니까.
"가장 이상적인 커피로는 에스프레소를 꼽겠습니다. 에스프레소는 모든 커피의 시발점이자 모든 음료의 베이스죠.거기서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에스프레소가 좀 부담스럽다면 물이 섞인 아메리카노나 구수하고 연한 커피를 권해드리고 싶어요. 인위적인 압력 없이 자연적인 중력 투하로 만든 스트레이트 커피가 향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커피도 에스프레소예요. 정확하게는 에스프레소 전 단계로 물의 양이 적은 리스트레토를 좋아하죠.커피와 물이 닿는 시간이 많을수록 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
▶바리스타가 되려면 자격증이 필요한가요.
"민간 자격증들이 있어요. 국내에서는 한국교육협의회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죠.유럽에선 유럽스페셜티 커피협회에서,미국에선 미국스페셜티 커피협회에서 자격증을 딸 수 있어요. 유럽 스페셜티 커피협회 레벨1은 국내에서도 취득할 수 있지만 레벨2의 국내 취득은 불가능합니다. "
▶각종 바리스타 대회를 휩쓸었던데요.
"2006년 지카페 라테아트대회와 한국바리스타 챔피언십(KBC)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처음 참가했던 대회에서는 예선에서 탈락하기도 했죠.떨어지고 나서 커피머신을 부순 적도 있습니다. 대회에 참가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이후로 수상한 대회에서 드러난 저의 이미지가 '편안한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커피를 만들어 서빙할 때 이미지가 좋았다고 하더군요. 대회에서 입상하려면 기술적인 측면도 중요합니다. 창작 매뉴로는 콩을 발효해서 커피와 어울리게 한 게 높은 점수를 얻었고,라테아트 대회에선 미적 감각이 세밀하고 뛰어나다고 평가받았습니다. "
▶어떤 계기로 바리스타가 되셨나요.
"학생 때인 2002년 압구정동의 어떤 카페에 갔는데 거기서 제대로 된 이탈리아 카푸치노를 처음 먹어봤어요. 지금도 그 맛이 잊혀지지 않는데,그 매장의 바리스타를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어 도전했죠.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400만원이 넘는 커피머신도 사고 커피빈 등 커피 회사에 들어가 커피를 만드는 기능적인 부분부터 배웠습니다. 2004년 캐나다 밴쿠버로 커피 연수를 가서 현지 라테아트 전문점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익히며 현지 커피문화를 체득하기도 했고요. "
▶바리스타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긍정적인 마인드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라고 모든 손님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손님들 중에는 '커피맛이 안 좋다'며 클레임을 거시는 분도 간혹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적절하게 대처하는 센스를 갖추는 게 바리스타의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런 맛이 나는 이유를 합당하게 설명하고 손님의 요구에 맞게 바꿔드려야지요.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으면 바리스타로 살아남기 힘듭니다.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요. 하루 9시간 정도 서서 일하고 손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하는 만큼 체력 부담도 적지 않습니다. 매장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 1500잔씩 커피 주문이 몰리기도 하죠.온 몸에 커피 찌든내가 나기도 합니다. 손님이 많은 점포에선 엄청난 설거지까지 한 적이 있죠.건강과 체력은 무시못할 중요 자질입니다. "
글=김동욱/사진=양윤모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