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생 35년…느낌 통하는 4050팬 많아 행복"

2년만에 무대 서는 윤석화씨…'시간이 흐를수록' 주연 맡아
"요즘 말투가 까칠해졌대요. 점점 '리다(극중 여주인공의 이름)'가 돼가는 거죠.이 정도면 성공예감이에요. "

보브컷의 단발머리,꽃을 얹은 은은한 헤어밴드,눈동자를 반짝이며 환하게 웃는 모습,55세의 나이는 간 데 없고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이다. 다음 달 7일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막을 올리는 '시간이 흐를수록(원제:오래된 코미디)'의 주연을 맡은 윤석화씨를 지난 주말 서울 반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의 아그네스''넌센스' 등에서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윤씨는 2년 만에 복귀하는 이번 연극무대에선 잔잔하고 서정적인 캐릭터에 도전한다. 그는 "이전 배역이 건반에서 도와 그 다음 도를 왔다갔다 했다면 이번엔 미,파,솔을 연주하는 기분"이라며 "중년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이 중년 남녀의 잔잔한 사랑이야기라면 20~30대 젊은층이 공감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질문에 "예술이란 게 나와 비슷한 얘기에 끌리기도 하지만 결국 나와 '다른 것'을 보는 게 재미 아니겠느냐"며 "마치 내가 뮤지컬 '사춘기'를 보면서 위로받듯,엄마 아빠 세대를 이해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극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35년의 인생이 그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 "제 연극을 보러 오는 분들은 대부분 40~50대예요. 제 또래 관객이 많다는 게 곧 축복 아니겠어요. 나의 무대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또 날 잊지 않고 찾아준다는 뜻이니까요.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 선종 소식에 슬픔이 남달랐다는 그."평범한 사람이라면 차라리 좋았을 거예요. 자칫 '애도'를 빙자해 오해받을까 싶었어요. 참 이상하죠.유독 성직에 계신 큰 어른들이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김수환 추기경님,강원룡 목사님까지….살면서 그 사랑 다 갚으라고 큰 사랑 주셨나봅니다. "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것 저것 따지다가 결국 빈소를 찾지 못한 게 후회된다는 그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앞에서 스스로 다짐한 게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귀한 것도,아무리 큰 별도 언젠가는 이별하는구나. 살아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표현해야겠다'고.그래서 중년의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35년간 한눈 팔지 않고 연극만 고집해 온 그다. 이제 더 큰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 그는 "80세 할머니가 됐을 때,후배가 무대 뒤켠으로 지나가는 10초짜리 행인 역할을 줘도 흔쾌히 무대에 오를 것"이라며 웃었다. 이어 "배우 윤석화의 이름을 걸고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관객들이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선 안된다"며 연기연습에 게으른 후배들을 따끔하게 야단친다는 그는 후배들의 오겹살 파티에 간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김보라/정동헌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