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정부의 PSI 엇박자

장성호
"남북현안은 물론 관계국과의 협의가 아직 안 끝났고 내부 절차도 진행 중이어서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외교부 관계자)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의 외교통상부 기자실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청와대 관계자와 정부 당국자들이 이날 오전 10시쯤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전면 참여 발표를 할 것이라며 비공식적으로 시간까지 전해왔다가 갑자기 발표시기가 주말로 늦춰진 탓이다. 자연 연기 이유를 묻는 기자들과 답변을 피하는 외교부 관계자 사이에 언성이 높아졌다. 전날 외교부 고위 관계자가 "PSI와 관련해 관계국과의 협의는 잘 매듭지어졌다"란 얘기와 상충되는 말에 어리둥절한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내자 이 관계자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정부는 PSI참여 발표시기를 놓고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외교부 측은 "북한이 로켓을 쏘면 즉시 PSI에 참여하겠다"고 밝혔으나 '4 · 5 북한 로켓 발사' 이후 청와대 당국자는 "(PSI 참여로)북 로켓에 바로 대응하는 자세는 좋지 않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다 14일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14일이나 15일 참여할 것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으나 외교부는 하루만에 "주말(18~19일)쯤 참여 발표를 할 계획"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로 인해 다양한 억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부처 간 파열음도 흘러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가 14일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성급하게 판단,발표 시점을 잘못 공개했다. 대북현안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주말로 미뤘다"고 말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당장 대북현안이 쉽게 풀릴 기미가 없다. 외교부의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통일부는 정부의 PSI발표를 전제로 부랴부랴 브리핑을 준비하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말에 PSI 참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혼선 속에 이미 PSI의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북한 전문가는 "대북현안을 이유로 발표를 미뤘다는 것 자체가 PSI가 북한을 겨냥했다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라고 말했다. 내부 불협화음은 막 가는 북한만 도와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