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인터뷰] "하루 200대씩 맞으며 맷집 키워, 카운터 펀치는 연습에서 나와요"

이종격투기 'K-1맥스코리아' 챔피언 임치빈씨
"땡~" 입식타격기 국내 최강자를 가리는 'K-1 맥스코리아' 결승전이 열린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동 센트럴시티 밀레니엄 홀.

경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신장 173㎝의 그는 자기보다 10㎝가량 큰 상대와 주저없이 맞붙었다. 하지만 긴 팔과 긴 다리를 이용한 상대방의 공격이 매서웠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상대방의 왼손 훅이 그의 턱에 꽂혔다. 첫 번째 다운이었다.

카운트 '세븐(7)'에서 그는 일어섰다. 하지만 다운의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심판이 '파이트'를 외치자 비틀거리는 그의 얼굴에 상대방의 체중을 실은 미들킥이 작렬했다. 10초 만에 다시 다운.그의 패배를 직감한 팬들의 아쉬운 탄성이 신음처럼 흘러 나왔다.

그러나 그는 카운트 '에이트(8)'에서 오뚝이처럼 또 일어났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지면 안 된다는 승부사의 본능이 발동했다. 간신히 공격자세를 취한 그를 향해 상대방은 승리를 예감한 듯 서둘러 킥을 날렸다. 수십만 번 이상 연습했던 동작이 본능적으로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정신도 덜 수습한 상태에서 그는 날아오는 킥을 오른손으로 제치고 상대방 얼굴에 강력한 왼손 카운터 펀치를 꽂았다. 승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링 위에서 울었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챔피언이 된 아빠에게 달려온 딸을 품에 안은 채 감격의 눈물을 흘린 그의 이름은 임치빈(29).두 번의 다운 끝에 한 번의 카운터 펀치로 역전극을 일궈낸 그는 요즘 세계무대 도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K-1 맥스코리아' 챔피언에 이어 세계대회인 'K-1 월드맥스'를 준비 중인 임 선수를 그의 체육관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칸짐에서 만났다.

▼우승을 축하합니다.

"오랜 기간 준비한 결실을 거두게 돼 기쁩니다. 대진 운이 좋지 않아 1회전부터 3라운드 판정까지 가서 체력적인 부담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많은 훈련을 소화한 끝에 극적인 우승을 할 수 있었어요. 결승전에서는 경기 초반 두 번 다운을 당했지만 훈련을 할 때 보디 공격에 대한 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죠.맷집은 괜찮습니다. "▼격투기를 직업으로 삼은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했어요. 고교 시절에는 무에타이(주먹과 발을 모두 사용하는 타이식 복싱)를 하다 보니 강한 남자에 대한 동경이 생겼습니다. 대학교 때 처음 아마추어 경기에 나갔는데 우연히 이겼어요. 그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두 번째,세 번째 경기에서 연달아 지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기왕 하는 거 최고의 파이터가 되자고 마음 먹고 직업으로 택했죠."

▼다른 선수보다 키가 좀 작아서 불리하지 않나요.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이수환 선수보다는 10㎝ 정도 작죠.큰 상대와 붙을 때는 무섭다기보다는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손해를 봅니다. 킥이나 펀치의 파워에서 밀리거든요. 웬만한 상대는 저보다 크니까 그런 면에서 약간 불리해요. 하지만 작은 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신장의 불리함은 빠른 스피드로 극복할 수 있어요. 모든 게 완벽한 선수는 없으니까요. 파이터로서 저의 장점은 스피드뿐만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저의 동체시력(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시력)이 좋다고들 해요. 상대의 신장이 커도 펀치와 발차기가 날아오는 걸 볼 수만 있다면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키가 작아도 파워에서 밀리지 않도록 힘을 키우는 훈련을 많이 하죠."

▼연습벌레라고 하던데요.

"남들보다 많이 하려고 노력하죠.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는 맷집 강화 훈련에 중점을 뒀어요. 특히 복근과 보디 강화 훈련을 열심히 했죠.하루 100㎏이 넘는 헤비급 선수에게 배만 200대씩 맞는 훈련을 했으니까요. 온 몸을 골고루 맞았죠.또 스피드를 강화하기 위해 30초 안에 발차기를 80번 하는 연습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유명한 말처럼 링 위에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려면 연습밖에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 밖에도 연결동작을 본능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훈련을 꾸준히 했습니다. 결승전에서 카운터 펀치를 날린 동작 있잖아요? 상대의 발차기가 날아오면 손으로 방어하고 들어오는 상대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그 동작은 정말 10년째 연습하는 동작이에요. 수십만 번은 연습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연습해야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거든요. "

▼링 위에서 무섭지는 않습니까.

"링 위에서는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해요. K-1 최강자였던 피터 아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링으로 출근한다'고요. 그만큼 링 위가 편하다는 의미겠죠.저도 링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즐기려고 합니다. 제가 연습한 기술들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보자는 거죠.맞으면 정말 아프죠.아무리 맷집 강화 훈련을 해도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아파도 제 기술을 활용하는 데 집중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다운당했을 때,그리고 상대방을 다운시켰을 때 기분이 궁금합니다.

"다운당하고 나면 정말 아무 생각도 안듭니다. 개그 프로그램 중에 그런 게 있잖아요? 자신한테 최면을 걸면서 '레드 썬!'하면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오면 아무 기억도 안나는….그런 기분이에요. 정신을 차려 보면 제가 링 위에 누워 있죠.내가 왜 누워 있는지 처음에는 파악이 안 됩니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순간적인 기억상실 상태가 되는 거죠.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세컨의 외침이 들려옵니다. 그 소리가 한 줄 동앗줄과 마찬가지죠.그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싸우러 왔고 방금 전에 한 대 맞았다는 것을 순식간에 깨닫는 거죠.상대를 다운시킬 때는 정말 손맛이 옵니다. 묵직한 느낌,있잖아요? 야구선수가 홈런을 치고 직감하듯이 격투기 선수들도 상대를 무너뜨리는 펀치를 날리고 나서는 쾌감을 느낍니다. 상대를 다운시키고 나서는 중립 코너에 가서 기다리죠.그거 아세요? 모든 격투기 선수들이 쓰러진 상대를 보는 그 순간,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제발 일어나지 마라'는 주문을 외우죠.기도하는 심정이에요. 상대가 일어나면 절망스럽죠.그래도 다시 싸웁니다. 저는 프로 파이터니까요. "

▼다른 운동도 잘 하나요.

"격투기는 이것저것 많이 배웠어요.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가지고 있다는 태권도 초단 자격증부터 프로 태권도 4단,킥복싱 4단,격투기 4단,모두 합쳐 13단이네요. 취미로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소속사 직원들이 축구를 할 때면 저도 끼워 달라고 하는데 아시다시피 제 발차기를 잘못 맞으면 다칠까봐 그 쪽에서 말려요. 저도 부상 위험이 있어서 자제하는 편이고요. "

▼체중 감량이 어렵지는 않나요.

"제 원래 체중은 70㎏이 안 돼요. K-1 맥스의 체중 규정이 70㎏이거든요. 오히려 체중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계체량을 맞추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은 74㎏ 정도 나가는데요,시합 전 하루 정도 굶고 계체한 다음에 늘립니다.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달리기를 한 시간 정도 합니다. 집이 분당인데 근처 율동공원을 네댓 바퀴 정도 돌아요. 그리고 집 근처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가서 1시간 반 정도 근력훈련을 합니다. 점심을 먹고 체육관에 나와서는 2시부터 6시까지 기술훈련을 해요. 7시 정도에는 집에 들어가죠.규칙적인 생활이에요. "

▼두 아이의 아버지잖아요.

"딸이 다섯 살,아들이 네 살입니다. 링에서는 격투기 선수이지만 집에 가면 아이들한테 꼼짝 못합니다. 집에 가는 순간 제 몸은 놀이터가 되요. 아이들이 타고 노는 놀이기구인 거죠.제가 경기를 하는 날이면 아이들이 경기장에 와요. 이번 대회 나갈 땐 딸아이가 꼭 이겨 링 위에서 자기를 안아달라고 하더라고요.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앞으로의 계획은요. "세계대회인 K-1 월드맥스에서 우승하는 것입니다. 이번이 네 번째 도전이죠.지금까지 세 번 출전했는데 모두 1회전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강자들이 많지만 다시 한번 도전해서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요. 이겨도 져도 링은 여전히 제 놀이터니까요. "

글=박민제/사진=김병언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