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흥망의 '다윈코드'] (9) 포목→화학원료→카본블랙→폴리실리콘…OCI, 진화위해 옛것을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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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송장벌레의생존술국내에서 전략적 퇴화로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은 OCI(옛 동양제철화학)다. 포목→화학원료→카본블랙→폴리실리콘 등으로 옛 것을 과감하게 버리면서 신사업 영역을 개척해 온 것.
OCI는 2000년대 중반까지 증권가에서 자산주로 불렸다. 사업의 가치보다는 깔고 앉아있는 공장부지 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얘기다. 역사도 기업만큼이나 무거웠다.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리는 창업주 이회림 명예회장이 1937년 포목상인 건복상회를 세워 사업을 시작했고,1959년에 설립한 동양화학이 현재 OCI그룹의 모태가 됐다. 이후 웬만한 화학제품에 안 들어가는 데가 없는 필수 원료인 소다회와 과산화수소,폴리우레탄 원료인 TDI 등을 생산하며 차분한 성장을 거듭했다. 조용한 변화가 시작된 건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거평그룹으로부터 제철화학과 제철유화를 인수했다. 하지만 이 변화에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세간의 이목을 끈 건 2006년 3월 세계 3위 카본블랙(타이어 재료) 업체인 미국 컬럼비안케미컬즈(CCC)를 인수하면서부터다. CCC를 통해 굿이어,미쉐린 등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들에 카본블랙을 공급하면서 글로벌 업체로 주목받았다. 진화하지 않을 것 같던 회사에 변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3개월 후 OCI는 태양전지 핵심소재인 폴리실리콘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은 뜬금없는 선택이라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때맞춰 국제유가가 오르기 시작했고,각국 정부는 석유 대안으로 태양광산업 육성에 나서기 시작했다. 환경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사업 진출을 선언한 지 한 달 만에 미국 선파워와 전년 매출의 20%가 넘는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폴리실리콘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신현우 부회장은 "불과 2년여 만에 3대 메이저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공한 것은 절묘한 투자 타이밍이었다"며 "이는 100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진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폴리실리콘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OCI는 CCC를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필요없는 기관을 퇴화시키는 진화를 시도하듯 말이다.
유창재 기자 you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