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던 씨티銀 다 말아먹고… 야구단에 거액 퍼 주다니…"

뿔난 주주들…분노의 주총장
'소탐대실(penny-wise,pound-foolish).' 미국 정부로부터 총 4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씨티그룹이 21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커피와 음료조차 준비하지 않은 탓에 주주들로부터 들은 비판의 소리다.

비용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취지였지만 주주들 눈에는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한 조치로 비쳐졌다. 그러면서 행사장 식음료 반입을 금지시켰다. 비용을 절약한다면서 50여명의 경호원을 동원해 뉴욕 힐튼호텔 주총장을 삼엄하게 관리하기도 했다. 주주들은 씨티 경영진이 아직도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며 그릇된 경영 행태에 불만을 쏟아냈다. 먼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관련 부실을 막지 못한 이사회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컸다. 한 투자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14명의 이사 중 조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뒤 "(부실이 쌓일 때) 씨티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매년 주총에 참석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에블린 데이비스 주주는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씨티필드에 4억달러를 후원하기로 한 게 가장 멍청한 일이며 주주의 돈을 낭비한 결정"이라고 질타했다.

전미공무원종사자연맹(AFSCME)에서 기업 지배구조 및 연금 투자를 담당하는 리처드 퍼라우토씨는 "이사들이 충분히 오랫동안 근무해온 만큼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투자자들은 "좋은 은행이 몇몇 사람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고 고함치기도 했다.

또 다른 투자자들은 어떻게 이사들이 선임됐는지를 따져 물으며 주주를 외면한 채 공산주의 방식으로 이사진을 구성했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 최고경영자(CEO)와 전임 CEO 등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임원의 보수를 결정하는 것은 구단 메츠의 연봉을 양키스가 결정하게 하는 것만큼 웃기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등 유력 언론들은 이날 1500여명이 참석한 주총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면서 어느 때보다 우울하고 분노로 가득찬 행사였다고 보도했다. 이사회 멤버들은 6시간 내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주주들은 리처드 파슨스 씨티 이사회 의장이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을 포함한 5명의 이사가 사임한다는 사실을 공표하자 환호성을 터트렸다.

루빈 전 장관은 씨티 이사회 핵심 멤버로서 씨티가 주택 관련 자산에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하도록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주주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4명의 신임 이사와 재선임 대상인 이사들은 70% 이상의 찬성으로 선임됐다. 신임 이사는 US뱅코프의 CEO를 지낸 제리 그런드호퍼와 뱅크오브하와이(BOH) CEO를 지낸 마이클 오닐,채권투자회사 핌코의 전 공동회장 윌리엄 톰슨,필라델피아 연방은행 총재를 지낸 앤서니 샌토메로 등 4명이다. 비크람 팬디트 CEO는 "씨티그룹이 재건과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을 갖고 있다고 확실히 믿고 있다"며 "정부의 구제금융 450억달러를 이자와 함께 모두 갚을 것이며 가능한 한 빨리 배당금도 예전 수준으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했다.

씨티는 1분기에 16억달러의 순이익을 냈으나 신용카드와 대출 자산 부실 확대로 허울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