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성공단 합의 스스로 뒤엎은 북한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한 남북합의서를 사실상 파기(破棄)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해왔다. 북측 근로자의 임금인상에다 토지사용료도 당초 약속과 달리 4년 앞당겨 지불하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해온 것이다. 상호합의에 의해 지금껏 가동돼온 공단운영에 대해 어느날 갑자기'특혜조치'라는 것부터가 터무니없는 떼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깝다. 더구나 정확한 사유도 모른 채 24일째 억류돼 있는 우리 근로자 신병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공단을 남북관계의 볼모로 잡겠다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다.

남북화해와 경협활동의 상징물처럼 여겨졌던 것이 개성공단 사업이다. 금강산 왕래가 끊어지고 정치 · 외교적으로 상호 경색국면에 빠졌어도 개성공단만큼은 그럭저럭 유지돼왔다. 장기적 관점에서 상호이익이 된다는 것도 작용했겠지만 북이 개발합의서,경협합의서,체류합의서와 법으로 입주기업의 경영보호와 종사자 신변안전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간 8년8개월을 공들여 100개가 넘는 남쪽 기업이 진출,3만8000명의 북측 근로자가 일할 정도로 성장해왔다. 이런 개성공단을 우리를 위협하는 '무기' 정도로 보는 북의 인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 북의 노림수가 더 많은 현금을 받아내자는 것인지,우리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공단폐쇄 결정을 하게 하면서 스스로는 그에 따른 국제적 비난을 면하자는 생트집인지 아직까지는 분명치 않다.

정부가 북의 재협상안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한 만큼 앞으로 접촉이나 회담이 원만히 진행된다면 그 의도는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의도가 무엇이든 우리 근로자의 신변안전도 확인 안되고 그간의 합의사항이 쉽게 무시되는 이런 상황에서는 북의 제안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점은 상식이다. 무엇보다 원칙의 문제이며,상호합의 정신의 이행에 관한 문제다. 이런 식으로 마치 남쪽을 길들이기 하겠다는 협박에 한번 끌려가면 끝이 없다는 점도 정부당국은 다시한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의제가 뭔지,북에서는 어떤 급에서 누가 나오는지,접촉 방식조차 모른채 가서 별다른 성과도 없이 휘둘리다 돌아온 정부 대응방식에도 문제는 있었다. 분명한 원칙에 입각(立脚)하되 정교한 대북정책을 가다듬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