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요지부동' 中企대출 목표

김현석 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
"은행이 본업인 대출업무를 포기하겠다니 말이 됩니까. 이런 해프닝은 정부가 막무가내로 중소기업 대출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한 시중은행이 최근 신규 주택담보대출 억제에 나섰다. 모든 대출에 대해 지역본부에서 승인하겠다는 공문을 전 영업점에 뿌린 것.이는 정부와 맺은 외화채무 지급보증 양해각서(MOU)에 따라 대출 증가액의 45%를 중기대출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신규 가계대출을 해주면 위험은 크고 수익성은 없는 중기대출을 '울며 겨자먹기'로 해야 한다.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매월 말이 되면 주거래은행 지점에서 돈 10억원을 쓰라고 해서 받아온다고 했다. 이 돈은 다음 달 1일 갚는다. 은행들이 매월 마감 시점에 중기대출 실적으로 잡기 위해서다. 이처럼 은행권에선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중기대출 정책에 따라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사들과 현장에서 부딪히는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사정을 잘 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지난해 말에 올해 성장률을 약 3%로 예상하고 중기 대출 목표액을 50조원으로 잡았지만,지금은 자금 수요 자체가 줄고 있다"며 "은행도 건전성을 들여다보며 대출해야 할 것"이라며 감독정책의 방향을 은행 건전성에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일하는 금융위원회는 요지부동이다. 갖은 독려에도 중기대출이 1분기 10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올해 연간 50조원,상반기 30조원이란 목표를 손 댈 생각이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금 목표치를 조정하면 은행들이 일시에 중기대출을 줄여버릴 우려가 있다"며 "아직 목표 수정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은행들은 어쩔 수 없이 100% 보증서를 들고온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있다. 최근 경제 성장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우량한 중소기업은 투자를 미뤄 자금수요가 없다.

자금수요가 있는 곳은 직원 임금도 대출받아서 내줘야 하는 한계 기업이 대부분이다. 이런 곳에 대출을 주면 몇 달 뒤 연체로 이어지고 부실채권이 될 것이다. "이번 위기 뒤에 승자는 가장 적은 재정을 효율적으로 써서 큰 부담없이 위기를 이겨낸 국가가 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충고를 새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