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기회인가 위기인가 (上)] 생산성 10년째 제자리… 환율효과 못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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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인지도는 상승…도요타식 체질개선 나서야
'고환율 효과는 신기루로 끝나고 마는가'.현대자동차가 '어닝 쇼크' 수준의 1분기 실적을 발표한 23일,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IR(기업설명회)에 모인 애널리스트 등 참석자들의 관심은 이렇게 요약됐다. 현대차가 미국과 중국 시장 등에서 상대적으로 선전해 온 게 사실이지만,글로벌 복합불황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1분기 실적이 보여줬다는 평가가 대세였다.
하지만 현대차 주가는 이날 어닝 쇼크에도 불구,3.18% 급등했다. 사상 최대 수준으로 높아진 시장점유율 등 실적 속에 담긴 미래 성장 가능성에 투자자들이 더 주목했기 때문이다. 체질 개선을 서두른다면 한번 더 도약할 기회가 남아있다는 시장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악화되는 수익성
1분기 내내 국내외 시장에서 주목을 모았던 현대차의 '질주'는 수익성이 낮은 중 · 소형차의 상대적인 호조 덕분이었음이 드러났다. 상대적인 선전을 벌였다고는 하지만 '속빈 강정'이었던 셈이다. 1분기 영업이익률이 최저 수준인 2.5%로 떨어졌다는 게 그 방증이다. 현대차는 영업이익률이 작년 3분기처럼 파업 등으로 일시적으로 악화됐던 경우를 빼고는 6~7%를 유지해 왔다.
수익성 악화는 소형차 판매 비중이 높았다는 것 외에 판매 감소에 따른 공장가동률 하락도 한몫 해다. 현대차의 1분기 가동률은 70%에 머물렀다. 문제는 당분간 시장 상황이 개선될 조짐이 없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재고수준 등을 감안할 때 현대차는 향후 3분기 이상 대규모 감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현대차의 해외시장 선전을 뒷받침해줬던 고(高)환율도 하강 조짐이 뚜렷하다. 지난달 2일 1570원까지 올랐던 원 · 달러 환율은 23일 1348원으로 떨어졌다. 원 · 엔 환율도 같은 기간 100엔당 1611에서 1374엔으로 하락했다. 현대차 매출은 원 · 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연 매출이 1200억원씩 감소하는 구조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원 · 달러 환율이 하반기에는 1124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생산유연성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현대차는 지난 1분기 중 공장간 물량 조정이 합의되지 않아 아반떼 등 주문이 밀린 차종을 생산하지 못했다. 그만큼 1분기 실적이 꼬일 수 밖에 없었다.
◆높아진 시장점유율은 '기회'현대차가 공격적인 마케팅 등을 통해 해외 주요 시장에서 점유율을 한껏 끌어올린 것은 향후 글로벌 선두그룹 진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현대차의 1분기 글로벌 시장점유율(미국 유럽 중국 한국 인도 기준)은 5.8%로 전분기(4.8%)보다 1%포인트나 급등했다. 기아자동차(2.9%)와의 합계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8.6%로 두자리수 진입을 눈앞에 뒀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도 점유율이 작년 4분기 2.6%에서 4.3%로 높아졌다. 정태환 현대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올해는 GM 등 미국업체 구조조정으로 이탈하는 고객을 집중 공략해 미국 점유율을 5% 유지하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시정점유율 상승은 미국 일본 등 경쟁업체들이 각각 파산위기와 엔화 강세 등으로 주춤하는 동안 현대차는 강력한 마케팅 활동을 펼친 게 주효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올들어 미국 소비자가 실직하면 차를 되사주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2월초 열린 슈퍼볼 중간광고를 내보내는 등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판매 부진 속에서도 1분기 중 해외시장개척비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00억원 늘리는 등 '선(先)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연초 제네시스가 아시아 대형차로는 처음으로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되고 2월에는 아반떼가 미국 소비자 잡지인 컨슈머 리포트로부터 소형 세단 부문 '최고의 차'로 2년 연속 뽑히는 등 현대차의 마케팅 강화는 브랜드 인지도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기 동안 높아진 브랜드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은 경기 회복이 되면 더욱 강한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