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에게 듣는다] 이광일 "유동자금 풍부해 집값 하반기 가도 안떨어질 것"

이광일 신한은행 부동산전략팀 부장
미분양·신규 아파트보다는 강남권 재건축 단지가 유망
"하반기에 집값이 조정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기업이나 인력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경우 약간 흔들릴 수도 있지만 큰 영향 없이 최근 수준을 유지한 채 내년을 맞을 것으로 봅니다. "

이광일 신한은행 부동산전략팀 부장은 은행에서만 25년째 근무해온 베테랑이다. 돈의 흐름을 읽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지금은 팀원 16명과 함께 신한은행 PB · 기업 고객들을 대상으로 부동산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그는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오른 이유는 저금리에다 토지보상비 유입 등으로 유동성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 컸다"며 "하반기에도 부동자금이 줄어들 것 같지 않아 집값은 지금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조조정 강도가 웬만큼 크지 않으면 집값을 끌어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최근 집값 급등 지역 역시 풍부한 유동성이 '맷집' 역할을 할 것인 만큼 하락세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추격 매수에 나서는 것은 신중하라"고 당부했다. 집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더 오른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저금리로 이자 부담이 줄어 집주인들이 집을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만큼 급매물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도 있다. 이 부장은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할 만한 여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며 "구조조정 진행 정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3분기는 돼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완화가 시장의 기대와 달리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매수 타이밍을 한 템포 늦춰야 하는 이유로 꼽았다. 정부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이 가격에 반영됐지만 실제 적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률을 법정 상한선까지 높일 수 있고 임대아파트 건립 의무가 줄어드는 것은 호재이지만 나머지 규제 완화책은 유명무실해졌거나 안갯속에 빠져 있다"며 "정부가 풀겠다고 밝힌 규제 완화 대책이 모두 가격에 반영돼 있는 만큼 매수자 입장에서는 대책들이 실제로 집행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건축 아파트 소형 주택 의무 건설 비율은 정부가 법을 바꿔놨지만 서울시가 종전 비율(전용 60㎡ 이하 20% 이상)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유야무야됐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제도 폐지 문제도 여전히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만약 집을 사야 한다면 어떤 집을 알아봐야 할까. 일단 그는 미분양을 포함한 신규 분양 아파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분양가에 대한 매력이 크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이 부장은 "인천 청라지구 한라비발디가 1순위에서 마감했지만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분양가가 저렴하다는 인식이 퍼진 결과"라며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낮거나 비슷하지 않으면 차라리 기존 주택을 찾아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매입에 나설 만한 지역으로 강남권을 추천했다. 강남권의 공급 부족 우려가 상당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강남에는 새로운 아파트를 지을 만한 땅이 없는 데다 서초구 반포래미안을 제외하면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 사실상 끊겼다는 점을 꼽았다. 위례(송파)신도시 사업도 지지부진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 부장은 "한강르네상스나 초고층 아파트 개발 등의 호재로 강남권 재건축은 상승세가 꾸준할 것입니다. 반포 압구정 잠실 등 대규모 재건축 단지라면 하반기에 추이를 봐서 사둘 만하다"고 조언했다. 여유자금이 3억원 정도라면 지하철 9호선 주변의 역세권 소형 아파트를 사둘 만하다고 추천했다. 1~2인 가구가 42%에 이르고 베이비 붐 세대가 큰 집보다 작은 집을 선호하는 추세여서 수익률이 대형 주택 못지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분 투자는 재개발보다 뉴타운 지역을 꼽았다. 단지 규모가 큰 만큼 기반시설이 잘 갖춰지기 때문이다. 그는 한남뉴타운을 높이 평가했다. 대지 지분 가격이 크게 올라 투자수익이 거의 없으리란 말까지 나돌지만 나중에 일반분양을 받는 것보다는 나을 것으로 예상했다. 입지가 좋고 용산 개발 호재가 크다는 이유다. 송파구 거여 · 마천뉴타운도 유망 지역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집주인들에게는 "기다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저금리 기조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고 매수심리도 어느 정도 회복되는 양상이어서 집주인으로서는 서둘러 팔 이유가 없다"며 "금융위기가 확산되지 않는 한 집값이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여유를 가지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