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그대 삶이 고단하다 느낀다면

복거일 < 소설가 >
경제 위기가 닥친 뒤에 책이 더 많이 팔린다는 얘기가 들린다. 실제로 판매량이 늘었는지,아니면 다른 상품들에 비해 많이 팔린다는 얘기인지 확실치는 않지만,책이 불황기에 수요가 느는 상품들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일차적 요인은 책을 읽는 것이 가장 값싸게 여가를 즐기는 길이라는 점일 터이다. 책 한 권이면 적어도 한 주일은 즐길 수 있으니,외국 여행이나 골프와 같은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대체재들인 영화나 공연 관람보다 여가를 즐기는 데 돈이 훨씬 덜 든다. 그러나 그런 계산만으로 불황기에 책이 더 많이 팔리는 현상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삶이 어려워지면,책에서 지혜와 위안을 찾는 '진정한 수요'가 늘어난다. 삶이 순조로울 때,사람은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삶을 즐기기 바쁘다. 살아가는 일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사람은 삶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삶이란 무엇인가?'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철학적 물음들을 자신에게 묻게 된다. 몸이 아파야,몸과 건강에 대해 마음을 쓰게 되듯.

그리고 삶에 대해 성찰하는 데 책만한 것은 없다. 아니,책 없이 삶을 성찰하기는 어렵다. 선현들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책 없이 우리가 성찰을 지속적으로 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성찰의 폭과 깊이는 선현들의 지혜를 빌렸을 경우에 비길 수 없다.

이 일에서 효용이 특히 큰 것은 문학이다. 실제로 삶이 어려워지면,사람은 소설을 가까이 하고 시를 읊으면서 새삼 커 보이는 삶의 문제들에 마음을 모은다. 요즈음 신경숙의 소설이 인기가 높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뛰어난 작가인 그녀의 작품에서 사람들은 그녀가 보여준 삶의 숨은 결들을 보게 되고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계기를 얻을 것이다. 문학이 그렇게 인기가 높은 근본적 이유는 문학이 잘 짜인 이야기들이라는 사실이다. 이야기는 우리 삶에서 근본적 중요성을 지녔으니,사람의 지식은 모두 이야기의 형태를 취한다. 작은 일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심오한 과학 이론에 이르기까지,우리는 어떤 사물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그것을 설명하고 이해한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의 형태로 정리해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는 본질적으로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실은 언어 자체가 이야기의 모습이다. 한 문장은 주어를 통해 어떤 화제를 도입하고 그 화제에 대해 술어가 어떤 논평을 하거나 정보를 제공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말하면,우리는 북한을 화제로 도입하고 이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진술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없이는 우리는 어떤 지적 활동도 할 수 없다. 가장 뛰어난 이야기인 문학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음엔,문학은 삶의 특질들을 구체적 이야기들로 내놓는다. 문학만이 실제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지 자세하고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다. 다른 형태들로 이루어진 지식들은 대개 추상화를 거치므로,문학처럼 이 세상의 거칠고 복잡하고 서로 얽힌 모습을 자세하고 생생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실제로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 특히 시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아주 잘 보여준다. 좋은 시들은 삶의 숨은 결들을 보여주고 그런 결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들을 기억할 만한 형태로 다듬어 낸다.

불황은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때 불황 덕분에 다시 책을 찾은 독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다시 책을 멀리할까? 아니면… 어쨌든 삶을 성찰하는 데는 책보다,특히 문학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