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위기 모드를 유지하라

고광철 부국장겸 경제부장 gwang@hankyung.com
이상하다 싶을 정도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스트로스 칸 IMF총재,4월23일)는데 코스피는 올 들어 20% 가까이 뛰었다. 상승세가 여간 강한 게 아니다. 서울 강남의 일부 아파트 가격도 1억~2억원 올랐다.

'위기설'이니 '캄캄한 터널'이니 하며 가슴 졸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주식과 부동산 시장만 보면 그런 걱정은 옛날 일 같다. 한국경제를 깎아내리던 외신도 달라졌다. 뉴욕타임스는 삼성전자가 1분기 적자예상을 깨고 47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자 "한국이 경제전문가를 놀라게 했다"고 보도했다. 정말 봄기운이 싹트는 걸까. 최악의 상황은 지난 걸까. 지난주 내내 이런 의문을 갖고 경제전문가들과 기업인들을 만났다. 대답은 '금융시장이 좋아진다고 허리띠 풀렀다간 큰일난다'는 걱정 일색이었다. 그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일부만 인용한다.

"경제위기가 진정되면 그때 모든 것이 잘될 줄 믿고 공격적인 자산운용에 나서거나 지나친 낙관론에 함몰돼 구조조정을 등한시하기 쉽다. 이런 때 덩달아 춤추지 말고 자신의 몸을 제대로 추스르고,구조조정을 확실히 하는 것이 진짜 경기가 좋아졌을 때 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일부 자산가격의 오름세에 취해 바닥에서 헤매는 우리경제의 진짜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다. 언젠가 위기에서 벗어날 때쯤 수렁에서 함께 나온 다른 나라를 완전히 제낄 수 있도록 미리 군살빼기와 근육강화훈련을 제대로 하라는 주문이기도 했다. "경기가 회복됐느니 어쩌니 하는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6월까지는 기다려봐야 한다. 도요타자동차를 봐라. 적자를 냈다지만 내부유보금이 엄청나다. 한국 기업들은 손실을 적게 내려고 안달인데 일본기업들은 이런 때 부실을 왕창 털어버린다. "(박종우 삼성전기 사장) 박 사장은 경기가 진짜 살아나는지 미심쩍어 긴장 속에서 판매동향을 챙기고 있다고 했다.

"현대자동차가 1분기에 1538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은 고환율 덕이다. 환율효과는 언제든지 사라진다. 진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박홍재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소장) 박 소장은 지금의 회복세는 미약하고 경기부진이 오래갈 수 있다며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월 연체율이 떨어지니까 기업 사정이 좋아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분기 말에 나타나는 특수한 효과 때문이다. 중소기업 대출도 정책적으로 연장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보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김병호 하나금융지주 부사장)실물경제동향을 비교적 정확히 아는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위기 모드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주가가 오른다고,부동산이 들썩인다고,1분기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플러스(0.1%)로 돌아섰다고 '상황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대공황(1929~1932년) 당시에도 주가가 20%씩 오른 게 4번이나 있었다. 그런데 오른 후엔 어김없이 전저점 밑으로 다시 떨어졌다.

긴장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니다. 세계경제도 한국경제도 위기는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