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00년전 대한제국…밤이면 온동네 다듬이질 소리가…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에밀 부르다레 지음|정진국 옮김|글항아리|1만6500원

'서대문 근처에 최근 놓인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지나 뽕나무 궁전(경희궁)으로 건너간다. 이 뽕나무 궁에는 새롭게 수리된 별채 하나가 있을 뿐으로 열병식 날 이곳에 행차한 군주가 자리를 잡는다. (…)옛 군사학교 옆에는 극장이 있다. 불과 몇 달 전에 바뀐 것이다(협률사).'

100여년 전 대한제국에 4년간 체류했던 프랑스 고고학자 에밀 부르다레가 묘사한 서울 풍경이다. 광산 개발과 관련해 기술자문을 하던 그는 1901년부터 1904년까지 대한제국에 체류하면서 조선인과 조선 문화를 세밀하게 기록했다. 최근 번역된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에서 그는 구한말 격동기의 조선 상황을 간결한 문체와 수십 장의 흑백 사진으로 보여준다. '조선인은 꽤 커 보이고 체격도 훌륭하다. 중국인처럼 전형적인 몽골 타입이 아니다. 광대뼈도 덜 튀어나왔고 피부도 더 밝다. 대단히 지적인 눈을 반짝이는 부드럽고 선량한 표정에 놀라게 된다. 요컨대 조선인은 착한 아이 같고 마음씨도 좋아 보인다. '

부르다레가 철도 기술자문을 맡았기 때문에 철도국에 대한 기록이나 서울에서 개성,평양 간 철도에 관한 기록도 눈에 띈다. 개항 이후 형성된 외국인 조계지역의 댄스파티와 외국 공사관들의 교류 상황 또한 흥미롭다.

시내를 활보하고 극장에서 배우에게 추파를 던지는 양반들의 거들먹거리는 모습,먹고 마시고 취하는 '식탐 많은' 모습,손님이 값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거나 얼버무리고 마는 거리의 행상들,밤마다 도시 전체를 울리는 다듬이질 소리,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절절 끓는 온돌방,거리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는 사람들,헐벗은 산야,논 위에서 춤을 추듯 씨앗을 뿌리는 모습,강가에서 물고기를 낚아 내장도 꺼내지 않고 양념에 찍어 뼈째 씹어먹는 낚시꾼들….시어머니가 위세를 떨치는 '시어머니의 나라'와 미신이 판치는 '무속의 나라',극단적이며 낭비적인 '관료제의 나라'라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또 일제의 침략 야욕을 간파하고 위조화폐 도입까지 눈여겨 살핀다. 조선의 쌀을 탐냈던 일본인들이 질 좋은 쌀은 일본으로 보내고 그 빈자리를 일본의 질 나쁜 쌀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니켈 위폐로 결제하는 걸 보고는 '일본인들이 밀수꾼인 데다 비할 데 없는 위조지폐 제조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썼다. 책에 실린 30장의 흑백사진도 자료적 가치가 크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