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前대통령 검찰 출석] 담배 한개비 피우고 상의 벗고…盧, 예상대로 적극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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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어떻게 진행됐나노무현 전 대통령은 30일 오후 1시22분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 현관에 들어선 뒤 허영 대검 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아 7층 이인규 중수부장실로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은 여기서 신문을 지휘하고 있는 이인규 중수부장과 함께 차를 마시며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차는 최고급으로 치는 우전 녹차가 제공됐다.
중수부장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협조해 달라"
3개 수사팀 교대로 조사, 민감한 질문엔 "모른다"
좌석은 중수부장실에서 상석인 가운데 자리를 비워둔 채 한 쪽에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변호사) · 전해철 변호사가,맞은편에 이 중수부장과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앉았다. 이들 사이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으나 이 중수부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 중수부장은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운을 뗀 뒤 소환 조사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봉하마을에서 밝힌 심경과 같은 취지의 대답이다.
노 전 대통령은 또 "검찰의 사명감과 정의감을 이해한다"면서도 "다만 조사 과정에서 서로 간의 입장을 존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중수부장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이 수사를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고, 조사시간이 많지 않으니 진실이 밝혀지도록 잘 협조해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잘 알겠다"고 답했다. 배석한 홍 수사기획관과 문재인 · 전해철 변호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홍 수사기획관은 "장시간 버스로 이동한 탓에 지치고 만감이 교차하는 착잡한 표정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수부장실에서 차를 제공한 검찰 직원은 "차 온도는 미지근한 정도로 따뜻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1시40분께 중수부장실을 나와 형 건평씨가 조사받았던 특별조사실 1120호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책임자인 우병우 중수1과장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조사실에 마련된 소파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운 것으로 알려졌다. 우 과장이 "상의를 벗고 편안하게 조사에 임해 달라"고 요구하자 노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고 조사석에 앉았다. 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의 뒤 벽면에 붙어 있는 책상에 앉아 진술을 도왔다. 검찰은 먼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넨 모든 돈과 대통령 직무의 전반적인 관련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어 100만달러,500만달러,12억5000만원과 3억원 등 의혹별로 3개 수사팀 검사 1명이 돌아가며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검찰은 먼저 100만달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에게 "정말 몰랐느냐"고 추궁했지만 서면질의 답변서와 마찬가지로 노 전 대통령은 "전혀 몰랐고 퇴임 후에야 아내(권양숙 여사)가 받은 사실을 알았다"고 답했다.
검찰은 이에 "채무 변제용으로 썼다면 용처를 밝힐 수 있느냐"고 되물었지만 "밝힐 수 없고, 나는 모른다"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피의사실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만큼 방어권을 확실히 구사하겠다고 선언한 기존 입장 그대로 노 전 대통령은 조사에 임했다. 검찰은 500만달러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과 치열한 대립각을 세웠다. 검찰은 "정상문 전 비서관,박 회장,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2007년 8월 3자 회동에 대해 알았느냐"고 묻자 노 전 대통령 측은"몰랐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어 "박 회장이 이 자리에서 언급한 500만달러가 결국 조카사위 연철호씨와 아들 건호씨에게 건너가 이들이 사용했다. 이것이 우연이냐"는 취지로 묻자 노 전 대통령 측은 "퇴임 후에 알았고 호의적 투자가 개입된 것으로 보여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빼돌려 차명계좌에 보관해온 청와대 공금 12억5000만원과 다른 3억원에 대해서도 정 전 비서관과 사전 교감이 있지 않았는지 추궁했다. 조사를 받던 중 오후 6시 30분 저녁시간이 되자 노 전 대통령은 조사실 옆에 마련된 변호인 대기실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인근 식당에서 배달된 특곰탕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식사를 마친 후 짧게 몇분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조사에 임했다. 조사는 밤까지 이어졌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