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증시에 '스파게티 볼 효과' 경계론

최근 들어 한국 증시에서는 점점 심해지는 '스파게티 (누들) 볼 현상'(spaghetti or noodle bowl effect)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파게티 볼 현상'이라는 용어는 3년 전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 개발은행(ADB) 총재가 "아시아지역에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나치게 확산되면 무역의 복잡성을 증대시켜 오히려 기업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이른바 스파게티 볼 현상이 우려된다"고 지적한 데서 연유한다. 다시 말해 여러 국가와 맺은 FTA에서 서로 다른 규정(예컨대 원산지 규정)이 적용됨에 따라 마치 스파게티나 국수처럼 얽히고설켜 FTA가 체결되더라도 정작 수출기업들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실제로 국내 수출기업들은 짧은 기간에 FTA 체결국과 협상국이 많아지면서 종종 혼선을 빚고 있다.

스파게티 볼 현상이 우려되는 것은 비단 FTA정책뿐만이 아니다. 당장 우리 경기 상황을 보는 눈부터 제각각이다. 대표적으로 같은 1분기 성장률을 놓고 어떤 사람들은 작년 4분기 -3.4%에서 올 1분기 -4.3%로 악화한 점을 들어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기 대비 기준으로는 -5.1%에서 0.1%로 돌아선 점을 들어 회복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경제의 앞날을 보는 시각은 더 다양하다. 지난 1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치를 제시할 때만 하더라도 기대가 높았던 'V'자형 회복이 퇴조하면서 경기가 회복할 것이라는 시각이 'U'자형,'나이키 커브론','바나나형'등 웬만한 경제학자도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다. 또 장기간 침체될 것으로 보는 'L'자형과 'W'자형 시각도 여전하다. 경기 진단과 전망이 엇갈려서인지 정책방향도 혼선을 빚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정책 기조를 비상상황을 감안해 추진하고 있는 '플랜 A'에서 조만간 정상으로 돌아갈 것에 대비한 '플랜 B'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같은 맥락에서 시중의 과잉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는 요구도 일부 정책당국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증시의 두 축인 경기와 정책방향이 혼선을 빚음에 따라 주가를 보는 눈도 엇갈린다. 이미 강세장에 진입했다고 보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주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치는 반면 금융위기가 극복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조만간 하락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우리 증시를 어둡게 봤던 일부 비관론자들이 최근에는 갑자기 낙관론으로 돌아서 이들의 말을 믿고 투자했던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그동안 비관론자들은 지난해 말 코스피 지수가 저점 통과 후 1000선을 돌파할 때 500선(조정 최저선 기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다. 그 후 1200 돌파시에는 700선대로,1300이 넘어서자 1100선으로 조정될 것이라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이처럼 주가가 올라갈 때마다 곧 조정될 것이라는 이들의 말을 믿었던 투자자라면 아직도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이들은 지난해 말 저점 대비 50%,올 3월 초 이후 30% 이상 상승한 주가를 놓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투자심리상 주가가 하락할 때 손실을 보는 것보다 주가가 올라 남들이 이익을 볼 때 자신이 소외된 것에 더 가슴 아파하게 마련이다.

대개 스파게티 볼 현상은 모든 경제 현안에 대해 주도력이 없거나 관계부처 혹은 경제주체 간 충분한 합의 없이 특정한 목적이 결부돼 무리하게 추진할 때 자주 발생한다. 또 증시에서는 고객인 투자자들을 우선하기보다는 '틀리면 그만이고 맞으면 자신이 스타(흔히 족집게로 표현)가 된다'는 영웅심리가 작용할 때 나타난다.

우리 속담에 '얽히고설킨 국수는 아주 찬물에 담갔다가 꺼내면 가지런히 정돈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찬물에 넣어 정신차리게 할 수는 없지만 최근 증시에서 다시 심해지고 있는 '스파게티 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가가 상승할 때마다 비관론을 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떤 식으로든 이와 비슷한 조치를 해야 할 시점이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