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은 말랐는데…공장은 안팔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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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매입후 싸게 재임대 나서라"#인천 남동공단에서 기계부품 업체를 운영하는 김 사장은 연초 20년간 가동해 온 공장을 매물로 내놨다. 실물경기 위축으로 주문이 끊기는 바람에 공장이라도 팔아 운영 자금을 마련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사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김 사장은 "자금난에 몰려 공장이라도 처분하려는 중소기업 사장들이 주변에 많지만 정작 찾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中企 '세일 앤드 리스백' 요구
#경기 반월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 업체의 박 사장은 요즘 사채 빚에 시달리고 있다. 원자재를 살 돈이 없어 은행을 찾았지만 재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아 결국 사채를 끌어다 썼다. 박 사장은 "아들 집까지 담보로 잡힌 상황에서 버티다 못해 공장까지 내놨지만 이마저도 팔리지 않아 한숨만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올 들어 수십조원대의 중소기업 자금 지원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최소한의 운전 자금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기업이 적지 않다. 정부가 은행들에 대출을 늘리라고 독촉해도 지점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정부가 할당한 실적 채우기용으로 우량 중소기업에만 자금을 지원할 뿐이다.
반월공단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중소기업 공장 매물이 쌓여만 가고 있다"면서 "예전의 절반 가격에 공장을 내놔도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세일 앤드 리스백(Sale & Lease back)' 방식의 지원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금융회사가 공동으로 일종의 기금을 조성해 중소기업의 공장을 사들인 뒤 이를 다시 해당 중소기업에 싼 가격에 임대해 자금 사정에 숨통을 터줘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가 살아나 전반적인 자금 사정이 좋아지면 공장을 처분한 기업이 우선적으로 재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면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사장은 "현 정부와 금융권이 갖가지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세웠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세일 앤드 리스백 방식으로 공장을 매각하면 중소기업은 감가상각비와 이자 비용을 줄일 수 있어 50% 이상의 손익 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한 자금 담당 임원은 "이 제도가 도입되면 중소기업은 사업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1석2조'의 효과를 얻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중소기업청은 이 제도를 실행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500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태 점검에 들어갔다. 중기청은 한 달 동안 현장 조사를 벌여 업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시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