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학원 10시까지' 시도해볼 만하다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
군비경쟁 함정 빠진 사교육, 공교육 경쟁체제 전환이 관건
"공교육은 가난한 학생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JS 밀이다. 학부형의 재력이 있다면 홈스쿨 등 사교육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민주주의 시대가 되고 교육이 국민 복지의 최저 조건으로 규정되면서 이 고전적 언명은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사교육 문제는 고질적인 패러독스의 하나다. 지역감정 문제가 그렇듯이 건드릴수록 복잡해질 뿐이고 공개적 언어와 숨겨진 행동이 다른 기만적인 주제다. 전교조 교사까지 제 자식만큼은 대치동 과외를 시키고 싶어한다는 정도다. 공교육을 정상화하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한 정의(定義)를 수정하지 않는 동안 논의는 번번이 겉돌게 마련이다. 거꾸로 공교육을 정상화해도 사교육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도전적인 가설을 세워보자.이 가설은 학생들의 평균적인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것을 공교육의 목표라고 본다. 그러나 사교육은 '내 자식'의 '상대 순위'를 높이는 것이 목표다. 이 경우라면 학부형들의 사교육 비판은 대체로 위선에 가깝다. 사교육은 본질적으로 군비경쟁과 비슷하다. 아무리 핵폭탄이 많아도 상대보다 한 개라도 더 가지려는 것과 같이 다른 학생보다 한 등급이라도 순위를 높이려는 부모가 있는 한 사교육은 무한의 경쟁 상태를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이렇게 재정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교육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공교육이 잘되어도,그리고 전교조가 없어져 교단이 정상화되어도 내 자식의 순위를 끌어올리려는 부모의 교육열이 사라지지 않는 한(아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도 줄어들지 않는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외부에 있지만 공교육 내부의 순위를 끌어올리는 것을 지향한다. 그래서 학교 성적이 중요할수록 더욱 번창한다. 이명박 정부가 영어몰입을 내놓자마자 영어학원들이 더욱 성업하는 것이 증명하는 그대로다. 가설은 입증된 셈이다. 문제는 공교육에 대한 정의다. 지금처럼 전인교육과 평준화라는 위선적 간판을 유지하는 동안은 백약이 무효다. '방과후 학교'라는 대안은 그런 면에서는 본질에 접근한 대안이다. 학교수업의 일부를 학원식으로 개편하자는 주장은 경쟁체제를 공교육 내부로 수용한다는 면에서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라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사 월급과 학교 체제를 지금처럼 방치할 수는 없다. 공부는 외부강사들이 맡고 학교와 교사는 좌판 벌여주고 자격증 임대료를 받는 우스운 꼴이다. 우리가 전교조와 평준화를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를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곳으로 만들어 놓고 제 자식은 조기유학에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은 분명 이중적인 행동이다. 논란이 많은 10시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교육이 군비경쟁적 속성을 갖는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군비감축 협정도 나름대로 성립할 공간을 갖게 된다. 곽승준 위원장의 '10시 대책'이 물론 정공법은 아니다. 그러나 사교육 참여자들의 핵무기의 총량을 감축한다는 면에서 나름의 타당성을 갖는다. 뒤엉킨 교차로에서 머리부터 들이밀고 보는 것을 시장적 경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이런 상황은 아쉽게도 경찰의 통제가 있고서야 비로소 풀리는 법이다.

물론 변칙들이 생길 것이다. 1980년대 과외금지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평균 아닌 수월성을 추구하는 경쟁시스템을 공교육 내부로 끌어들이는 정공법이 동시에 추구된다면 이 강제적인 군비감축 협정이 교육정상화를 위한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다. 물론 학원 규제는 보조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공교육을 경쟁 체제로 개편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 점을 명확하게 한다면 '10시 제한'도 시도해 봄직하다. 다만 초 · 중등생을 10시로 정한다면 고교생들은 11시 정도로 정해도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