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년 뒤 여수'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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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수여수 세계박람회가 3년 앞으로 다가왔다. 올림픽,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축제인 엑스포를 준비하기에는 여유있는 시간이 아니다. 엑스포는 시설뿐만 아니라 관람객에게 보여줄 내용물까지 준비해야 하므로 더 촉박하다.
'친환경 해양' 세계에 자리매김, 중앙ㆍ지방 정부 협력해야 성공
최초의 세계박람회는 1851년 런던에서 열렸다.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주철과 유리로 수정궁(Crystal Palace)을 만들어 고성능 증기기관,기관차,크레인 등 첨단 제강기술에 의한 장치를 비롯해 대형터널,다리모형 등을 전시해 산업혁명의 성과를 세상에 알렸다. 이후 세계박람회는 새로운 기술과 과학기술의 전시 및 교류의 장이 돼왔다. 기차,비행기,에어컨,텔레비전,나일론,축음기,엘리베이터 등 우리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발명품들이 세계박람회를 통해 처음 세상에 소개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올림픽이 세계박람회의 일부로 개최됐다는 사실이다. 제2회 올림픽은 1900년 파리세계박람회 기간에 열렸다. 당시 사람들은 올림픽보다 세계박람회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올림픽은 관람객을 세계박람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운동경기 행사로 진행됐고 박람회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다.
20세기 중반까지의 세계박람회는 경제발전에 초점을 두었으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인류가 직면한 과제에 대한 대안 제시 및 환경친화적 개념들로 서서히 변화했다. 2012 여수 세계박람회는 바다와 인류의 문제해결을 위한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연과 인간,선진국과 개도국,현세대와 미래세대 간 공존을 의미하는 '살아있는 바다,숨쉬는 연안'을 주제로 채택했다. 따라서 세계박람회는 새로운 기술의 전시뿐만 아니라 인류가 같이 고민할 문제에 대한 해법과 이를 시행할 방안에 대해 제시해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세계박람회기구(BIE)의 로세르 탈레스 사무총장도 세계박람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산(Legacy)'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세계박람회 이후 남은 기념비적인 것들을 보면 초기에는 파리의 에펠탑 같은 조형물이 있었고 최근에는 컨벤션센터,신시가지 등 도시 개발적인 것들로 변화했다. 대부분의 세계박람회가 대도시 중심에서 열려서 가능했다.
그러나 여수는 수도권에서 많이 떨어져 있고 인구도 30만명 정도인 지방 중소도시다. 다른 세계박람회와 같이 거대한 기념물이나 시설로 경쟁하기에는 그 태생부터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해양을 주제로 하는 여수세계박람회가 해양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활동과 연구,교육의 중심으로 태어난다면 그 어느 세계박람회보다 훌륭한 유산을 남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해양환경의 보존에 대한 법제가 잘 갖춰진 편이며 이에 대한 집행도 잘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미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우리의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할 의무도 갖고 있다. 여수세계박람회 시설을 이용해 개발도상국 해양정책 담당자를 교육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양연구의 중심으로 발전한다면 세계박람회가 남긴 유산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개발도상국에 가서 우리의 경험을 전달하는 '해양평화봉사단' 같은 활동을 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영향력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면서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한 연구과제인 '여수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 여수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면 이러한 활동은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해양 연구와 교육의 중심으로 커가는 일은 쉬운 일도 아니며 짧은 기간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수 세계박람회를 계기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추진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며 향후 세계박람회의 표본이 될 만한 유산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