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무사 터

김선정
국군 기무사는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다. 이 곳에 대한 기록은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무사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소격동은 고려시대 도교 수련과 제사를 지내던 소격서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사간원,규장각,종친부가 있었던 곳이고,일제 강점기에 수도육군병원이 건립됐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으로 지어진 본관 건물은 박길룡의 설계로 1929년 완성된 건축물이다. 박길룡은 지금은 사라진 종로 화신백화점을 설계한 근대 건축가다. 해방 이후 병원 시설로 쓰이다 한국전쟁 뒤 육군이 접수,1971년 기무사의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가 들어섰다. 이 곳은 신군부가 이끈 12 · 12사태의 진원지가 되는 등 현대사의 현장이었다.

기무사는 보통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군인들만의 공간이었다. 살벌했던 이 곳이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개관된다. 역사의 소용돌이 중심에 자리 잡은 공간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는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 한다.

첫째,근대화의 자취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지금의 서울에서 기무사 건물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근대 건축가의 작품적 가치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건축의 유산이기도 해서다. 이 때문에 새로 만들어질 공간과 기존 공간이 조화롭게 연출돼야 한다. 둘째,기무사는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의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주위에는 한국 미술계의 중요한 화랑과 미술관들이 길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개관하면 자연스레 문화의 거리가 조성돼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로서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인사동과 북촌을 연결,한국적인 모습과 국제적인 요소가 만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셋째,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중심에서 다소 떨어진 과천에 있다. 접근성의 문제 등 여러 여건상 현대 미술의 담론을 만들거나 세계적인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 소홀했다. 이 때문에 기무사에 마련되는 분관은 현대 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산하는 곳이 돼야 한다. 전통을 품으면서도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 및 전통과 현대를 통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

기무사는 지금 비어 있다. 빈 공간에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역사의 겹을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미술관이 만들어지기 전에 예술적 작업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역사를 읽고 이야기를 들려 주는 일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 이 곳이 담고 있는 기억과 역사를 예술 작품을 통해 보여 줄 수도 있다. 구전되는 이야기나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담는 작업 또한 가능하다. 잊혀진 기억이나 보이지 않는 역사적 흔적을 드러내는 일이 결국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