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의 자성…"브레이크 없는 급팽창이 공룡 키웠다"

지나친 미국·대형차 의존…위기 판단 미스도 발목
일본 도요타자동차 안팎에선 요즘 '패인 분석'이 분분하다.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도요타가 하루아침에 수천억엔의 순손실을 내는 적자 기업으로 전락한 이유에 대한 진단이다. 물론 일각에선 '도요타 위기론'이 엄살이란 지적도 있다. 지난해 창업 이후 처음 4369억엔(약 5조6000억원)의 순손실을 냈지만 작년 말 현재 12조3000억엔(160조원)의 내부유보금을 비축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세계 동시 불황의 타격이 경쟁사에 비해 훨씬 크다는 점은 도요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올 들어 4월까지 미국 시장에서 신차 판매 감소율은 도요타가 38.4%로 현대 · 기아차(-3.7%)나 폭스바겐(-17.9%)은 물론 혼다(-31.9%) 닛산(-35.8%)보다도 컸다.

◆확대 지상주의 부메랑도요타의 현 위기는 역설적으로 지난 5~6년간의 급성장 때문이란 해석이 많다. 도요타는 2001년 이후 2007년까지 세계 자동차 판매가 334만대 늘었다. 혼다 규모의 회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자동차 공장의 연간 생산 대수가 보통 30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6년간 공장 10개가 늘어난 것과도 같다. 이 기간 중 매출은 11조엔 증가했고,영업이익은 2배,순이익은 3배로 불었다. 이런 고속질주에 맞춰 도요타는 전 세계에서 연간 10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설비를 확장했다.

그러나 세계적 불황으로 수요가 얼어붙으면서 자동차 판매는 급감했다. 도요타의 올해 판매 목표는 650만대로 6년 전 수준이다. 졸지에 공장 10개가 필요없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공장 문을 당장 닫고,사원들을 다 내보낼 수도 없다. 브레이크 없는 무리한 확장의 결과는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왔다.

◆미국 · 중국 시장서 참패미국 의존도가 컸던 것도 문제로 꼽힌다. 2007년도 도요타의 총판매 중 북미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33.2%에 달했다. 일본(24.5%) 유럽(14.4%) 아시아(10.7%)에 비해 월등히 높다. 지난해 금융위기 발생 이후 경기침체의 골은 미국이 가장 깊었다. 도요타의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요타의 2008년도 지역별 판매 감소폭은 미국이 74만6000대로 일본(24만3000대) 유럽(22만2000대)에 비해 3배 이상 컸다.

높은 미국 의존도는 재기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불황 속에 세계 자동차 시장은 중 · 소형차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폭스바겐 피아트 현대 · 기아차 등 최근 약진하고 있는 회사들의 공통점도 중 · 소형차에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요타는 미국 시장에 집중하다보니 주력 차종이 중 · 대형 고급차다. '렉서스'가 대표적이다. 여전히 중 · 대형차 시장은 한겨울이어서 도요타의 고전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도 1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17% 감소한 12만5743대를 파는 데 그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도요타가 소형차 특수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탓에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도 고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원 40% 물갈이위기 판단이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UBS증권의 요시다 다쓰나마 수석 애널리스트는 "금융위기가 터지자 다른 회사들은 2~3m의 쓰나미를 우려해 미리 피했다. 도요타는 5m의 방파제를 갖고 있어 피하지 않았지만 실제 덮친 쓰나미는 10m짜리였다"며 도요타의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위기 상황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 초 중간결산 보고 회의에서 일부 임원이 시장 상황이 심각하다며 생산 구조조정을 주장했지만 무시됐다. 당시 기노시타 미쓰오 재무담당 부사장은 "결산 대책을 의논하는 회의에서 그런 얘길 왜 하느냐"며 논의 자체를 막았다는 후문이다. '와타나베 가쓰오 사장-기노시타 부사장' 라인이 초기에 위기의 심각성을 너무 가볍게 봤다는 비판도 있다. 다음 달 주총에서 창업주 증손자인 도요다 아키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는 것과 동시에 와타나베 사장과 기노시타 부사장 등 임원 40%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