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노무현 前대통령이 남긴 숙제

현실과 괴리…불행했던 '半통령', 국민통합으로 '온통령' 거듭나길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비극이었다. 그것도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공동체 전체를 휘감는 비극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참담함을 금치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정치적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그의 정치적 부상에는 시대정신과 같은 것이 있었다. 권위주의에 대한 청산,약자에 대한 배려,기득권 철폐와 같은 목소리들이 그를 통해 결집했다. 그럼에도 그가 왕성하게 추구한 개혁의 열기는 국민적 통합과 같이 가지 못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불협화음을 낳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지 못한 불우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의 불우함은 우리가 영화 '트로이'에서 본 헥토르의 죽음과 같은 것이었다. 트로이의 왕자인 헥토르는 천하무적인 아킬레우스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으나,자신의 진정성을 위해 끝까지 싸웠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전사(戰士)였고,또 진정성을 가진 전사였다. 그의 전사성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으나,그의 진정성을 평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가 외친 '열린 정치'나 '약자를 위한 정치'의 아젠다들이 비록 다른 사람에 의해서나마 꽃필 때를 기다려 보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원래 정치인의 삶이란 고독한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인기 많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처럼 국민적 우상으로 칭송받기보다는 사랑과 미움,대립과 갈등의 한 가운데 선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이런 정치인의 역할을 '악마와의 계약'이라고 지칭했다.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밖에 없고,'선역(善役)'보다는 '악역(惡役)'을 떠맡게 되는 까닭이다. 결국 정치인의 삶은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넘나드는 것처럼 파란만장한 삶일 수밖에 없다. 열렬한 지지자가 있는가 하면,격렬한 반대자들도 있다. 이처럼 정치인을 둘러싼 사랑과 미움의 소용돌이는 그 개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겠지만,정치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것이다. 15세기 피렌체의 정치사상가였던 마키아벨리는 로마의 정치에서 찬성과 반대,칭송과 비난이 극명하게 엇갈렸기에 자유가 발전했고,번영을 가져왔다고 갈파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살아생전 노 전 대통령이 뼈에 사무치도록 경험한 바 있는 호 · 불호,찬반양론의 격렬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리스의 현인으로 불리던 솔론조차 법을 만들어놓고 아테네를 떠나려고 했을 때 그의 욕심 없음을 칭송하기보다는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난의 근거는 물고기를 그물에 가득 잡아놓고,막상 그 그물을 끌어올릴 용기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노사모나 친노(親盧) 진영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정치가로서 받은 비난에 대해 원통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슬픔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그 슬픔은 원한이나 분노가 아닌 공동체를 위한 슬픔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는 사람들 중에 살아생전 그를 강하게 비판했던 보수주의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다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저 세상에서 노 전 대통령도 크게 반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동료의식을 느껴야 한다. 그에 대한 추모의 정이 통합의 단초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 '반통령'이 되었음을 자책했으나,그의 죽음으로 온 국민의 추모를 받으며 '온통령'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면,이것이야말로 바로 그가 희원했던 바가 아니었을까. 그의 마지막 말들이 이 점을 웅변한다. 오늘 우리는 한 마음으로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