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얼룩배기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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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며칠 전 아내와 함께 시내 모 백화점 식품관에 갔다가 최고가로 팔리고 있는 한우 칡소 쇠고기를 보고 반가웠다. 칡소는 몸에 칡넝쿨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고,그 줄무늬 모습이 호랑이 같다고 해서 호반우(虎斑牛)란 별명도 있다.
칡소는 고구려 벽화에 황소,흑우와 함께 그려져 있을 만큼 오래된 재래종이다. 한때는 육질이 좋아 임금님에게만 진상되던 귀한 몸이었다. 점박이 무늬가 있는 홀스타인 젖소가 널리 보급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므로 1927년 발표된 정지용 시인의 명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빼기 황소,1930년대 박목월 시인의 동요 '얼룩소',이중섭 화가의 줄무늬 있는 '소'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칡소다. 일제는 강점기 때 150만 마리의 한우를 전쟁 물자와 와규 품종 개량을 위해 징발했다. 그래서 일본 시코쿠 지방 코지현에서는'토사갈모 화우'란 품종으로 한우가 사육되고 있다. 일제는 와규의 모색(毛色)을 흑색으로 한우와 차별화하기 위해 한우의 모색(毛色)을 적색으로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1960년대 우리 정부도 일제 때 만들어진 기준을 이어받아 한우 개량사업을 벌였다. 그 당시 재래종인 칡소와 흑우를 털 색깔이 적색인 황소와 다르다고 해서 한우로 등록시키지 않아 급속히 도태됐다. 하지만 요즈음 한우 혈통을 보존하려는 농가와 정부의 노력으로 칡소와 흑우는 최고급 한우로 부활했다.
또 다른 점박이 얼룩소인 홀스타인에도 기막힌 사연이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육되는 홀스타인의 암소는 젖소이고,수소는 육우(고기소)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 때문에 우리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국내산 육우 송아지 한 마리 값이 폭락해 한우 1㎏ 가격도 안 된다. 이 때문에 육우 사육 농민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육우 축산 농민들은 국민들의 영양원인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약 30만 마리의 젖소를 사육하고 있다. 매년 태어나는 암송아지는 젖소로 키우고,수송아지는 전문적인 사육 방법으로 한우와 같은 사료를 20개월 동안 먹여 식용으로 판매한다. 한우는 30개월 가까이 고가의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우수한 마블링과 육질을 갖고 있고,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고가로 판매된다.
육우는 사료 먹이는 기간이 짧으므로 가격이 한우 대비 60% 수준이다. 육우는 마블링이 덜 발달됐지만 그에 비해 지방은 적고 양질의 철분,카르니틴,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카르니틴이라는 아미노산은 체내에 축적된 지방을 분해해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 마블링이 발달된 쇠고기는 비싸지만 맛이 좋고,마블링이 덜 발달된 고기는 저렴하면서도 건강에 좋다. 국내산 쇠고기를 저렴하게 즐기고 싶다면 우리 축산 농가에서 키운 국내산 육우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각기 다른 과거와 현재의 스토리를 지닌 두 얼룩소 중 칡소는 최고급 쇠고기로,육우는 대중적인 쇠고기로 우리 소비자의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