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유산(遺産), 어떻게 나눌 것인가

예전에 네 형제가 우르르 몰려왔다. 내게 유산을 정확히 분배해달라며 난리가 난 것이다. 고인이 되신 부친이 유달리 보물급의 서화와 도자기를 많이 소장하신 까닭에 탈이 난 것인데….

사실,부동산을 놓고 분배를 시작하면 기준이 명확해 손익계산이 확실할 터인데, 이건 그 가치가 모호한-아무리 감정을 한다해도-보물들이니 형제들끼리 자체적으로는 도저히 분배가 가능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형님은 조선 백자를 가지십시오! 제가 이 서화를 갖겠습니다" "아니, 무슨 소리야? 이 서화가 더 오래된 것이야. 네가 백자를 가지려무나" 이렇게 서로 '가져라, 내놔라'가 번복되다 소송까지 불사할 뜻을 보이자 법정에 가기 전 마지막 코스로 바로 나를 찾은 것이었다."법사님, 제발 구명시식을 해주십시오! 저희는 아버님의 진심을 꼭 알아야겠습니다. 도대체, 뭐가 얼마짜리고, 뭐가 명품인지 알아야 저희들이 사이좋게 나눠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유산 분배로 인해 구명시식을 해 준 전례가 없으므로 나는 허허 웃으며 난처해 할 뿐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없었다.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부자가 죽을 때 낙타 열 일곱 마리를 큰아들한테는 1/2, 둘째 아들에게는 1/3, 그리고 막내아들에게는 1/9을 주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런데 형제들이 모두 모여앉아 곰곰이 따져보니 이는 숫자로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 안절부절못하고 낙타를 죽일 것을 고민하자 어디선가 랍비가 한 마리의 낙타를 빌려주었다.
그러자 18마리가 되어 첫째는 아홉 마리를, 둘째는 여섯 마리를, 막내는 두 마리를 가지니 오히려 한 마리가 남는게 아닌가. 이에 랍비는 그 한 마리를 끌고 다시 빌려갔던 곳으로 끌고 갔다 한다. 이와 똑같은 상황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서로들 명품을 차지하려 하니,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아버지 영가를 불러 해결하려는 그들의 음모에 나는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바로 이 때 갑자기 묵묵히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막내 아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형님들 다 가지십시오!"
순간 장내는 조용해졌다. '다 가지라'니, 이게 웬 횡재인가.
"저는 아버님이 남기신 보물에는 관심이 없으니 알아서들 다 가지십시오. 이런 일 때문에 아버님 영가를 초혼해 여쭙는다는 것은 불효입니다, 불효!"
그는 폭탄선언을 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 형들은 이 때다 싶어 보물 목록에서 하나씩 빼고 더해 그들의 속을 다 채웠더랬다. 그런데 얼마 뒤 그 폭탄선언의 주인공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이유인 즉 '솔로몬의 재판'이 끝났다는 것이었다.폭탄선언 뒤 형들은 제 각기 보물들을 다 챙겨갔는데 이후 막내 동생에게 미안했던지 위의 세 형들이 제각각 다른 형들에게는 알리지 말라며 남는 보물들을 하나씩 전해주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형들이 가진 보물이나 그가 가진 보물이나 공평해졌다는 얘기였다.

나는 "화랑이 있어 좋은 까닭은, 화랑에서 그림을 보는 순간만큼은 그것이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반드시 좋은 그림을 내 집에 걸어놔야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란 의미도 될 것이다. 마치 꽃이 피어있기에 아름다운 것이지 내 것이기에 아름다운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한 마리의 낙타를 더하고 뺐던 랍비의 지혜보다 더 슬기로웠던 동생의 마음을 비운 자세. 이로 인해 부친이 남긴 가장 큰 보물은 아마도 그에게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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