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홍보맨이 사는법…"소설 쓴 기자, 계급장 떼고 한판 붙고 싶지만­…"

홍보맨은 고달파…보도자료 큰 사건에 묻히면 허탈, 부정적 기사엔 "뭐했나" 질책만
가깝고도 먼 당신, 기자…일부 '안하무인' 상대할땐 피곤,좋은 기자와 술자리 기다려 지기도

웬만한 회사엔 홍보팀이란 게 있다. 대외적으로 회사 이미지를 높이는 게 이들의 업무다. 언론 매체를 대상으로 하는 언론 홍보도 그 중 하나다. 이들은 각종 언론 매체에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가능한 한 좋은 기사가 실리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마디로 회사의 '입'이다.

언론을 상대로 한 홍보맨의 업무는 만만하지 않다. 좋은 일만 알려야 하는데,어찌된 게 언론은 좋지 않은 일을 기사로 만드는 것을 더 선호하고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모토는 '피알(피할 것은 피하고,알릴 것만 알린다)'이다. 그렇지만 이는 옛날 얘기다. 수많은 인터넷 매체들의 등장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기사가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홍보맨의 자질이나 사내 위상도 바뀌고 있다. 종전엔 사내에서도 '3D(difficult · dirty · dangerous)' 직종으로 취급됐었다. 지금은 '3S(strong · smart · sense)'를 갖춰야 할 수 있는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있다. #1.기자의 '직업병'을 함께 앓는다

홍보맨이 주로 상대하는 사람은 기자다. 그러다 보니 은연중 기자를 닮아 간다. 어찌 보면 숙명이다.

◆김 과장=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군요. 일부에선 언론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고….제가 마음이 편치 않네요. '직업병'인 모양이에요. ◆문 과장=저도 직업병 비슷한 게 있어요. 기자들과 비슷한 사이클로 살다 보니 기자들의 연락이 뜸하면 괜스레 불안하고 초조해지더라고요.

◆박 차장=홍보맨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 아니겠어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두 다리 쭉 펴고 9시 뉴스나 신문 한번 보는 게 소원입니다.

◆이 대리=출 · 퇴근길 지하철역에 가면 저도 모르게 신문가판대 앞에 있어요. 지하철역 신문가판대 위치는 거의 다 꿰고 있죠.#2.갑(甲)은커녕 을(乙)만 돼도…

홍보는 잘해야 본전이다. 잘되면 해당 사업부의 공이다. 반면 잘못되면 홍보팀의 책임이다.

◆박 차장=빵빵한 광고 자금으로 밀어붙이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곤 대부분 기업의 홍보맨 위상은 을도 아닌 병(丙)이나 정(丁)쯤 아닐까요.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낮은 자세로 일해야 하는 건 같으니까요.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부정적인 내용이 기사화돼서 경영진과 내부 직원들로부터 질책받을 때가 가장 억울하죠.◆김 과장=외부는 그렇다 쳐도 회사 안에서까지 인정받지 못할 때 화가 납니다. 승진에서 물먹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주요 결정 사항도 막판에야 통보받을 뿐입니다.

◆문 과장=극비 사항이 종종 언론에 먼저 보도되는 사례가 생기는 바람에 회사 내 다른 부서로부터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정보가 새 나갈 것을 염려한 다른 부서 동료들이 슬슬 피할 때도 많고요. 홍보실 직원을 아예 적과 내통하는 스파이 정도로 생각하는 거죠.

#3.일한 만큼 평가받고 싶다

언론홍보 업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 내내 일하고도 아무 소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박 차장=온라인 신문스크랩 서비스가 일반화되면서 예전처럼 새벽별 보고 나와 오리고 붙여 신문 스크랩을 만드는 수고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심적 부담은 더 커진 것 같아요. 인터넷 매체까지 신경 써야 하니까요.

◆이 대리=한 시간 일하고도 성과가 금방 눈에 나타나는 게 홍보인 것 같아요. 반면 100시간 공들여도 아무 성과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홍보맨의 딜레마라고나 할까요. 오랜 시간 기획하고 보완해서 홍보 자료를 냈는데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해 묻혀 버릴 때의 허탈감이란….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김 과장=신문에 손톱 만하게 실리는 보도자료가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실적으로 평가받는 홍보맨들에겐 중요할 수밖에 없죠.보도자료 잘 부탁한다고 100통 가까운 전화를 돌렸지만 신문이나 방송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기사를 찾아 보지 못하면 그 후유증은 상당히 오래갑니다.

#4.한대 패 주고 싶을 때도 많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 가까이할 수도,멀리할 수도 없음).'홍보맨과 기자 관계를 가장 절묘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김 과장=비판의식을 가져야 하는 게 기자의 직업 정신이긴 하지만 일부 기자들은 지나치게 안하무인 격으로 홍보맨들을 대합니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기자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 한대 패 주고 싶을 때가 많죠.

◆이 대리='소설' 쓰는 기자는 어떻고요. 취재원이 1을 말했는데 기사에는 1을 더 보태서 2라고 써 버리는 기자들이 간혹 있어요.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거죠.기사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취재원의 말을 왜곡해 인용할 땐 정말 계급장 떼 놓고 붙고 싶다니까요.

◆문 과장=회사에 부정적인 기사나 방송이 나왔을 경우 홍보팀은 그야말로 초비상 상태죠.담당 기자나 언론사를 찾아가 기사를 빼거나 수정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박 차장=홍보맨과 기자는 한마디로 애증 관계죠.한 쪽은 막고 한 쪽은 공격하는 운명이니까요.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친밀도도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출입하던 기자들을 만나는 게 기다려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5.홍보맨 전성시대 오나

기업과 사회의 접점이 확대되면서 홍보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일부 기업들이 홍보 전문 임원을 우대하며 전진배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과장=요즘 대기업을 중심으로 홍보 담당 임원들이 주요 보직에 임명되고 있습니다. 홍보맨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 좋습니다.

◆박 차장=각 기업마다 홍보 담당 임원들에게 재무 · 마케팅,리스크 관리 등 또 다른 전문 분야를 갖추길 요구하고 있습니다. 홍보맨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고요. ◆문 과장=그래도 홍보를 단순히 몸으로 때우는 직종으로 보는 시각은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홍보팀을 지원하는 후배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홍보맨에게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정호/이관우/정인설/이상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