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조업의 자존심 역사속으로 사라지다

앞선 기술력·세계 최대 생산력에도 불구 강성노조로 비용부담 커진 탓
54% 채권단 동의로 신속파산절차 통해 우량자산 중심 뉴GM 출범할 듯
[한경닷컴]“제너럴모터스(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What's good for GM is good for the country)” 1953년 찰스 윌슨 GM 최고경영자가 상원 청문회에서 한 이 말은 미국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GM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1908년 미시간 주 플린트시에서 출범한 GM은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기업으로 통했다.1948년 8기통 엔진 승용차를 세계 처음으로 선보였고 1996년에는 전기차를 개발,시험가동할 정도로 첨단 자동차 기술을 이끌어왔다.시보레(1919년) 오펠(1929년) 사브(1990년) 허머(1999년) 브랜드를 차례로 매입하며 사세를 불려왔다.불과 몇 년 전까지만해도 글로벌 GM은 한 달에 1개의 신 모델을 선보일 정도로 맹위를 떨쳤다.

앞선 자동차 관련 기술과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GM은 시대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공룡화돼 결국 무대에서 퇴장하게 됐다.GM이 쓰러진 이유는 강성 노조의 요구에 못이겨 비용 부담이 커진데다 경영진 무능으로 안방에서 외국 기업과의 경쟁 구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1935년에 출범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1936년과 1970년 두 차례에 걸쳐 임금인상과 복지 향상을 요구하며 회사 존폐를 위협할 정도의 파업을 벌였다.이후 회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등 수익성이 높은 차가 잘 팔릴 때는 버틸 수 있었지만 유가 상승 및 경기 침체로 차가 팔리지 않자 GM은 무더기 적자 늪에 빠졌다.2005년 이후 작년까지 GM의 누적 적자는 866억 달러에 달한다. 올들어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연명해 온 GM은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파산신청만은 피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자금줄인 정부의 요구에 따라 뉴욕 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내게 됐다.

다만 정부는 300억 달러의 추가 자금 지원을 전제로 신속한 절차를 통해 우량 자산 중심의 새로운 법인(뉴GM)을 출범시키기로 했다.미 정부는 GM의 파산보호 절차가 60~90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GM’ 지분은 정부가 72.5%(이중 12.0%는 캐나다 정부 몫),UAW의 퇴직자 건강보험기금(VEBA)이 17.5%,채권단이 10%를 보유하게 된다.미 정부는 국유화된 GM의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고 GM이 수익성 있는 회사가 되면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다.새 GM은 미 정부에 88억달러,캐나다 정부에 17억 달러 노조에 25억달러 등 총 170억달러의 부채를 안고 출범하게 된다. 신속 파산 절차에 필요한 조건은 어느 정도 충족했다.UAW는 퇴직자 건강보험 기금 출연금과 관련한 계약 변경 등을 74%의 찬성으로 승인했다.270억 달러의 채권을 보유한 채권단 중 54%가 회사측이 마련한 출자전환 방안에 동의했다.

‘뉴GM’은 수익성이 있는 시보레, 캐딜락, GMC, 뷰익 등 4개만 갖게 된다.나머지 브랜드 중 폰티악을 내년까지 없애기로 했으며 허머와 새턴,사브 브랜드의 미래도 올해 안에 매각이나 철수를 통해 정리할 계획이다.미국 내 47개 공장은 내년 말까지 34개로 줄일 방침이다.일부 폐쇄된 공장을 활용,소형차 생산을 강화하기로 했다.소형차 생산 확대를 통해 ‘뉴GM’의 전체 차 생산 중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66%에서 70%로 높이기로 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