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뉴스…정치 '겉과 속'] 민주당 노 전 대통령 압박할때는 언제고, 갑자기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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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정치부장
조문정국을 맞아 민주당의 기세가 거침이 없다.지지율도 한나라당에 앞섰다고 한다.거의 5년만이다.상승세를 몰아 청와대 여권을 대대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검찰총장 등 검찰 핵심라인의 파면 등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6월국회를 사실상 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전까지만해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10%초반대에 머물러 있었다.
지지율 정체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조문열기가 전국을 뒤덮으면서 자연스레 반 정부 정서로 확산됐고 이게 민주당 지지율 상승의 요체가 됐다. 현 국면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안 때를 연상케한다.당시 민주당의 분당을 통해 탄생한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은 총선을 불과 한달여 앞두고 의석 50석을 얻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반전의 장본인은 노 전 대통령이었다.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과 결별한 민주당이 노 전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키면서 분위기는 돌변했다.탄핵역풍이 거세지면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의석을 거의 줍다시피했다.
그걸로 끝이었다.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민주당의 지지율은 땅바닥으로 추락했고 더이상 오르지 않았다. 5년을 10%대에서 머물렀다.집권여당의 프리미엄을 총동원해 각종 선심성 정책을 쏟아냈으나 돌아선 민심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백약이 무효였다.
그래서 들고나온 게 노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였다.열린우리당은 노 전 대통령의 탈당을 은근히 압박하기 시작했다.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2007년 2월초 의원 20여명이 먼저 탈당했다.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압력은 더 거세졌다.
결국 2월말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떠났다.별로 좋지 않은 기억속에 결별한 것이다.그럼에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회복되지 못하자 신당을 창당키로 하고 열린우리당의 간판을 내렸다.100년 정당 기치의 정당이 3년9개월여만에 만을 닫은 것이다. 이후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후보들은 노 전 대통령과 자주 충돌했다.노 전 대통령이 정동영 손학규 두 유력주자를 구태정치라고 공격했고 이들은 노 전 대통령에 역공을 가하는 등 불편한 관계가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후에도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과는 일정한 거리를 뒀다.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민주당은 편파수사라는 주장을 폈지만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일정한 거리를 둬 온 게 사실이다.한 최고위원은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자살사건 부분에 대해서도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보이고 있는 행태는 조금은 지나치다는 얘기도 나온다.“노 전 대통령의 탈당을 압박하고 차별화에 나섰던 민주당이 조문정국이 도래하자 갑자기 상주를 자처하는 건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비판인 것이다.
민주당 홈페이지에도 비판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한 당원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 궁지에 몰릴때,검찰조사를 받으며 망신을 당할때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노심초사했던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적군이지 아군은 아니었다”는 자유게시판 글을 인용하며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않다”고 했다.
일부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신의가 없고 비겁하다”“정권 비판에 앞서 반성부터 해야 한다”는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지지율이 떨어질 때 멀리 하려고 했던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조문열기가 전국적으로 달아오르자 노 전 대통령과의 화해와 정책 계승을 들고 나온 건 그래서 어색하다.정략적인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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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정국을 맞아 민주당의 기세가 거침이 없다.지지율도 한나라당에 앞섰다고 한다.거의 5년만이다.상승세를 몰아 청와대 여권을 대대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검찰총장 등 검찰 핵심라인의 파면 등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6월국회를 사실상 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전까지만해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10%초반대에 머물러 있었다.
지지율 정체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조문열기가 전국을 뒤덮으면서 자연스레 반 정부 정서로 확산됐고 이게 민주당 지지율 상승의 요체가 됐다. 현 국면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안 때를 연상케한다.당시 민주당의 분당을 통해 탄생한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은 총선을 불과 한달여 앞두고 의석 50석을 얻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반전의 장본인은 노 전 대통령이었다.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과 결별한 민주당이 노 전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키면서 분위기는 돌변했다.탄핵역풍이 거세지면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의석을 거의 줍다시피했다.
그걸로 끝이었다.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민주당의 지지율은 땅바닥으로 추락했고 더이상 오르지 않았다. 5년을 10%대에서 머물렀다.집권여당의 프리미엄을 총동원해 각종 선심성 정책을 쏟아냈으나 돌아선 민심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백약이 무효였다.
그래서 들고나온 게 노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였다.열린우리당은 노 전 대통령의 탈당을 은근히 압박하기 시작했다.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2007년 2월초 의원 20여명이 먼저 탈당했다.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압력은 더 거세졌다.
결국 2월말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떠났다.별로 좋지 않은 기억속에 결별한 것이다.그럼에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회복되지 못하자 신당을 창당키로 하고 열린우리당의 간판을 내렸다.100년 정당 기치의 정당이 3년9개월여만에 만을 닫은 것이다. 이후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후보들은 노 전 대통령과 자주 충돌했다.노 전 대통령이 정동영 손학규 두 유력주자를 구태정치라고 공격했고 이들은 노 전 대통령에 역공을 가하는 등 불편한 관계가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후에도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과는 일정한 거리를 뒀다.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민주당은 편파수사라는 주장을 폈지만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일정한 거리를 둬 온 게 사실이다.한 최고위원은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자살사건 부분에 대해서도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보이고 있는 행태는 조금은 지나치다는 얘기도 나온다.“노 전 대통령의 탈당을 압박하고 차별화에 나섰던 민주당이 조문정국이 도래하자 갑자기 상주를 자처하는 건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비판인 것이다.
민주당 홈페이지에도 비판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한 당원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 궁지에 몰릴때,검찰조사를 받으며 망신을 당할때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노심초사했던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적군이지 아군은 아니었다”는 자유게시판 글을 인용하며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않다”고 했다.
일부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신의가 없고 비겁하다”“정권 비판에 앞서 반성부터 해야 한다”는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지지율이 떨어질 때 멀리 하려고 했던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조문열기가 전국적으로 달아오르자 노 전 대통령과의 화해와 정책 계승을 들고 나온 건 그래서 어색하다.정략적인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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