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영장기각… '선장' 잃고…검찰 '사면 초가'

野선 '박게이트' 수사 특검제 도입 정치 공세
"盧 서거 검찰도 책임"… 대검 중수부 폐지론도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검찰의 사전 구속영장이 '부실수사'를 이유로 기각당한 직후 임채진 검찰총장이 3일 자진 사퇴함에 따라 대검 중수부가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리게 됐다. 임 총장은 "원칙과 정도,절제와 품격의 바른 수사,정치적 편파수사 논란이 없는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한 단계 높이려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수사 실패를 일정 부분 인정했다. 대학 교수들은 이날 시국선언을 통해 검찰의 과잉수사 의혹에 대해 전면 사과를 요구했으며 민주당 등 야당은 특검을 관철시키겠다며 정치공세를 퍼붓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대검중수부 폐지론' '피의사실 공표죄 논란''기소독점주의 재검토' 등 반(反)검찰 여론에 시달려 왔다. ◆조직 부담 덜기 위해 사퇴

임 총장의 사퇴는 천 회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면서 '박연차 게이트'의 남은 수사 전체가 수렁에 빠질 것으로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임 총장은 천 회장의 신병 확보와 동시에 나머지 수사를 6월 초 · 중순께 조속히 마무리하고 사퇴할 의사를 굳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은석 대검 대변인은 "수사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고,각종 책임론 공방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검찰 조직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사퇴를 결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 총장의 사퇴로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맡고 있는 이인규 중수부장 등 간부진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로서 중수부 수사팀은 임 총장의 사퇴로 어느 정도 도의적 책임을 벗은 만큼 남은 수사는 임 총장이 사퇴의 변에서 호소한 대로 '당위성과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수사가 이뤄지더라도 검찰이 공소유지를 제대로 해 유죄를 이끌어 낼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한 참고인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진술을 번복 또는 거부하면서 협조하지 않아 수사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서거 이후 집중포화 시달려

천 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은 법원이 단순히 법리적 판단을 넘어 '수사 전체'를 부실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검찰에 큰 타격을 입혔다. 법원은 '천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대가로 6억2000여만원을 받았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또 증여세 · 양도소득세 포탈 및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법리상 다툼이 있거나 소명이 부족하며,소명이 일부 됐더라도 비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검 중수부는 천 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등은 일제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여론을 의식,기계적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펼친 증거"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대와 중앙대 교수 등은 이날 시국선언에서 "정적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검찰 수사에 근본적인 반성과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는 '대검 중수부 해체론'의 연장선상에서 제도적 검찰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대검 조직은 지검과 업무 중복영역이 지나치게 많은 데다 자체 수사권을 갖는 중수부가 정치적 사정수사에 동원되고 있다"며 "법무부의 검찰 인사와 예산 업무를 대검에 넘기고 대검은 순수 행정기관으로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