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엄마

엄마는 정말 힘이 센 모양이다. 뿔 나서 집나간 엄마가 장안의 화제더니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고,영화 '마더'는 대박 조짐을 보인다. 제목엔 들어 있지 않지만 내용상 엄마가 주인공인 아침드라마 '하얀 거짓말' 또한 시청률 고공 행진을 계속중이다.

'마더'와 '하얀 거짓말'은 전혀 다른 줄거리에도 불구,들여다보면 묘하게 닮아 있다. 두 엄마 모두 싱글맘인 점,그들이 미친 듯 사랑하는 아들이 지능 면에서 다소 모자란 점,둘 다 그 이유의 일단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아들 보호에 집착하는 게 그것이다. 두 사람의 모성은 지극함을 넘어 눈멈 그 자체다. '마더'의 엄마(김혜자)는 살인죄로 수감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안가린다.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그녀에게 진실은 거추장스런 방해물일 뿐이다. '하얀 거짓말'의 엄마(김해숙) 역시 아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

두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넋을 잃고 쓰러지거나 울고불고 하지 않는다. '마더'의 엄마는 비 오는 날 경찰 집 근처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따라붙기도 하고,적당히 타협하자는 변호사의 말을 좇지도 않는다.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일을 겪고도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얀 거짓말'의 엄마는 한술 더 뜬다. 그는 자폐증 아들이 원하는 일이면 무슨 짓을 해서든 이뤄준다.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며느리로 맞아들이기 위해 반대하는 여자쪽 집안을 망하게 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아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사리분별 따윈 필요없다. 맹목적 모성 앞에 이성은 물론 후환에 대한 두려움조차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는 또 침착하고 치밀하고 대담하다. 세상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로부터,남편의 혼외자식으로부터 아들을 지켜내자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능력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마더'와 '하얀 거짓말'의 엄마가 드러내는 힘은 무한대에 가깝다. 그러나 강인함을 넘어 무서워진 엄마의 모습을 보는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잔혹해서 눈물겨운 가모장(家母長)의 탄생'이란 표현을 쓴 이가 있거니와 영상물 속 '강한 엄마'의 등장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내기 힘든 이 땅 수많은 홀어머니들의 고단하고 슬픈 현실을 반영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