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까지 디자인 하는게 진짜 실력" LG 에어컨 디자이너 4인방
입력
수정
무더위가 찾아오면 혈색이 피는 사람들이 있다. 에어컨 디자이너들이다. 디자이너라고 하면 막연히 제품 외관을 치장하는 일을 떠올리지만 그렇지 않다. 에어컨 바람의 방향과 느낌까지 세세히 조절하는 게 이들의 몫.그래서 1년여간 땀흘려 만든 에어컨이 팔리는 요즘 에어컨 디자이너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5일 서울 여의도 LG전자 트윈타워.LG전자 휘센 에어컨을 맡고 있는 디자이너 4인방 김태일 책임연구원(41),성태현 책임연구원(39),김주상 선임연구원(34),유정주 선임연구원(35)을 만났다. 휘센이라는 이름의 에어컨은 모두 이들 손을 거쳤다. 올해 선보인 주력제품은 '포에버 와인 드레스'.이름만 보면 언뜻 여성의 드레스를 연상케 한다. "올해는 왜 보라색인가"라는 질문에 김태일 책임연구원의 표정이 굳어진다. 보라색이 아니란다. '와인색'이라고 했다. 그것도 농후한 맛이 나는 잘 익은 와인색.이 색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와인전문가를 수없이 쫓아다녔는데 이를 '보라색'이라고 했으니 섭섭할 만도 했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바람'으로 넘어갔다. 요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까지 디자인한다고 했다. 바람이 나오는 토출구를 어디에 뚫고 어떤 각도로 놓느냐에 따라 바람의 느낌이 다르기때문.요즘 대세는 자연스러운 바람.자연에 가까운 기분 좋은 바람을 만드는 것이다. 김주상 선임연구원은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움직여줘야 좋은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이 있는 곳을 스스로 파악해 소비자와 '교감'할 수 있는 바람을 몰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디자이너들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을까. 먼저 김주상 선임연구원.밝은 성격의 그는 전혀 다른 업종의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 '그림'이 떠오른다고 했다. 올해 제품은 증권가에서 일하는 친구와 술을 마시다 떠올렸다고 했다. 올해 액자형 에어컨을 맡았던 성태현 책임연구원은 "아이디어가 막힐 때 운전대를 잡는다"고 들려줬다. "무심코 달리다 보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라 좋다"고 했다. 홍일점인 유정주 선임연구원은 '쇼핑'이 비결이라며 웃었다. 구두 마니아인 그는 "여성용 구두는 건축디자인과도 맞닿아 있을 정도로 디자인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태일 책임연구원은 '전시회도 가고 책도 보는' 디자이너 업계의 모범생 스타일로 아이디어를 찾는다고 했다. 에어컨 디자이너들이 생각하는 에어컨의 궁극은 어떤 것일까. 기계이면서도 기계답지 않고,사람과 자연에 가까운 '즐거운 에어컨'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