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디플레이션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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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 호황뒤 불황은 치유 과정, 정부개입에 따른 인플레 대비를세계 곳곳에서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유가가 올해 최저점 대비 두 배 이상 올랐고,옥수수 귀리 등 곡물가격도 50% 이상 뛰었다. 또한 주식 및 부동산 가격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크게 올랐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해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구제금융과 유동성 확충,경기부양을 위해 많은 돈을 푼 탓이다. 이렇게 풀린 돈이 전 세계적으로 수십조달러에 이른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작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인플레이션 위협은 없으며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더 걱정"이라고 주장하며 확대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디플레이션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경제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유발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반쪽의 진실이다. 디플레이션에는 두 가지가 있다. '불황'디플레이션과 '성장'디플레이션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불황'디플레이션으로서 물가 하락으로 가동되지 않는 시설과 설비가 쌓이고 실업이 발생하는 경우다. 그러나 만약 물가가 하락하더라도 유휴설비가 없고 실업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려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물가가 하락하면서 고용이 증가하고 생산이 증가한다면 오히려 사회적 후생이 증가하게 된다. 생산성 증가에 따른 물가하락이 바로 이러한 경우로 이것을 '성장' 디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컴퓨터와 같은 첨단기술부문을 보면 '성장'디플레이션을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일한 성능을 가진 컴퓨터의 가격이 1980년에서 1999년까지 이 기간 동안 90% 하락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극적인 '디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생산은 1980년 49만대에서 1999년 4300만대로 급격히 증가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물론 소비자였다.
이러한 '성장'디플레이션이 경제전반에 걸쳐 일어난다면 소비자의 이득은 더욱 커지게 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된다. 미국 경제가 괄목할 만한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1789년부터 1913년까지의 기간이 그러했고,최근의 중국이 그렇다. 중국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소비자물가가 약 0.8~3.0% 하락하면서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7.6% 상승했다. 과거 100년간 17개국에서 발생한 디플레이션을 실증 분석한 앳키슨과 키호가 2004년 경제학의 최고 학술지인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대공황을 제외했을 경우 디플레이션 중 90%의 사례에서 불황은 뒤따르지 않았으며 "디플레이션과 불황이 관련된다는 주장은 사실상 근거가 없다"는 게 드러난다.
이번 경제위기는 미국의 초저금리 정책에서 연유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초저금리로 생긴 과잉유동성이 주택가격의 거품을 만들었고,금리가 다시 오르면서 주택가격의 거품이 꺼지는 바람에 작금의 경제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발생한 경제위기를 다시 초저금리 정책과 확대 재정정책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지금 디플레이션이 아닌 인플레이션의 조짐이 다시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크루그먼이 우려하는 것은 '불황'일 것이다. 그러나 미제스에 따르면 인위적인 호황 뒤에 따르는 불황은 상처 난 시장의 치유과정이다. 이러한 시장의 치유 과정을 회피하고 계속 정부가 개입하면 그것은 시장의 조정 과정을 방해할 뿐이고 우리는 또 다른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늦기 전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안재욱 <경희대 대학원장ㆍ경제학/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