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베니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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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정전 세계 미술계 인사들은 2년마다 베니스에서 만난다. 6월 초 비엔날레가 열리기 때문이다. 1895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본 전시를 진행하는 주제관과 각국이 운영하는 국가관으로 이뤄진다. 주제관은 자르디니공원과 아르센날레라는 부둣가의 창고를 개축한 공간에서 전시 총감독이 기획하고,국가관은 국가별 커미셔너의 재량에 따라 자국 작가의 작품을 보여준다.
올해의 주제는 'Making Worlds'.한국 작가로는 구정아와 양혜규씨가 참여했다. 베를린에 살고 있는 이 두 작가는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활동이 활발하다. 구정아씨는 공원 안에 작업을 설치했는데,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못보고 지나칠 정도로 작품 여부를 구분하기 힘든 작품을 설치했다. 양혜규씨는 아르센날레와 한국관에서 작품을 보여준다. '2009 베니스 비엔날레' 예술감독인 다니엘 비움바움은 1960~70년대 작가들과 현재 활동하는 작업을 연결시킨 전시를 만들었다. 예술가의 개념을 한눈에 드러내는 드로잉 작업들과 공간 활용이 돋보이는 건축적인 작업들,아르센날레의 정원을 활용하는 방식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국가관 중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선 곳은 아무래도 유명 작가들이 있는 미국관,영국관,프랑스관,덴마크관이다. 자르디니공원에 자리잡은 국가관으로는 한국관이 마지막이었다. 이미 많은 국가관이 들어서 있어 새 국가관이 공원 안에 들어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 국가관이 없는 나라들은 베니스의 기존 건물을 빌려 전시를 열게 마련인데,독일관 작가로 참여했던 백남준 선생이 베니스시에 공공 화장실을 지어주고 원래 화장실이 있던 자리를 한국관으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한 제의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한국관 건물은 예술의 전당을 설계한 김석철씨가 수상도시인 베니스의 특성을 살려 배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이탈리아어 자르디니는 공원으로 번역되는데,공원 안의 나무나 자연물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건물을 지어야 했기에 이 건물은 곡선의 벽과 직선의 벽이 함께 있다. 공간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천장 높이도 똑같지 않다. 그래서 한국관은 네모난 화이트 큐브에 익숙한 큐레이터나 작가들에게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 공간이다. 이러한 건물의 독특함은 전시공간을 꾸미는 데는 단점이지만,이를 장점으로 바꿔 흥미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재미가 있다.
국가관 제도를 가진 베니스 비엔날레는 국가별 경쟁이 치열하지만 국가라는 벽을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도 보여진다. 독일관은 올해 리암 길릭이란 영국 작가를 선정,전시하고 있다. 독일관에서 외국 작가를 초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백남준 선생이 1990년대 독일관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국가관 제도는 100년 전에 만들어진 제도지만 이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