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태의 트렌드 따라잡기] 점점 짧아지는 반바지…멋쟁이 남자들의 '패션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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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여전히 보수적인 남자들은 '반바지'라면 무조건 점잖지 못한 아이템이라며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반바지는 동네 잠깐 나갈 때 아무렇게나 걸쳐 입는 홈웨어가 아니다.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이나 칵테일 파티 등 어디에라도 입고 갈 수 있는 말쑥한 차림새니까 말이다.
수년 전부터 반바지의 인기를 예견한 몇몇 패션 디자이너들은 이미 봄 · 여름 시즌의 주력상품으로 반바지를 선택했다. 다만 일반인들이 반바지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반바지보다 훨씬 파격적인 스키니 팬츠가 남성복의 주류로 편입됐던 사례에 비춰본다면 솔직히 조금 늦은 감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입어야 반바지를 멋지게 소화할 수 있을까? 이번 여름 멋쟁이로 거듭나고 싶은 남자라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될 고민이 아닐까. 올여름 주목받을 반바지의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스포츠다. 여기서 말하는 스포츠란 요트,승마,테니스와 같은 귀족 운동이다. 자신의 사이즈보다 한 치수 큰 쇼트 팬츠에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강렬한 원색의 바람막이 점퍼를 입으면 그 자체로 훌륭한 패션 코디인 것이다. 물론 몸에 딱 달라붙는 피케 셔츠와 반바지 역시 영원히 사그라들지 않는 여름 남성복의 고전이다.
반바지를 입을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역시 슈즈의 선택.단언컨대 아무리 격식에 맞는 옷차림을 갖췄더라도 발가락 사이에 끼워 신는 통(일명 조리)이나 슬리퍼를 신는 순간,여성들이 기피하는 '아저씨 패션'으로 전락하고 만다. 스포츠룩 반바지와 환상의 마리아주를 이루는 신발은 바로 슬립온(실내화처럼 끈이 없는 단화)이다. 특히 계절감이 한눈에 드러나는 에스파르듀(밑창을 삼으로 엮은 것) 단화는 비단 반바지뿐 아니라 면바지와도 찰떡궁합을 이룬다.
두 번째 키워드는 봄부터 남성 패션의 주요 트렌드로 언급돼온 프레피 룩이다. 쉽게 말해 영국 귀족 자제들이나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즐겨 입는 스타일인 넉넉한 V네크라인 티셔츠와 무릎 길이의 화이트 반바지를 떠올리면 된다. 좀 더 멋을 부리고 싶으면 평범한 V네크라인 티셔츠를 벗어버리고 피트되는 셔츠와 재킷을 매치하도록! 올여름 베스트 스타일링으로 등극할 수 있다. 셔츠 컬러는 엷은 블루 계열을,재킷은 짙은 네이비 컬러를 추천한다. 이때 그레이나 베이지 팬츠를 매치하면 평범하면서도 품격 있는 룩을,핑크 · 라임 등 파스텔 톤의 팬츠를 입으면 로맨틱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이런 프레피 스타일의 쇼트 팬츠와 잘 어울리는 신발은 모카신과 같은 플랫 슈즈다. '토즈'의 드라이빙 슈즈나 '레페토'의 단화도 훌륭한 앙상블을 이룬다. 모카신을 신을 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철칙이 바로 '양말을 신지 않는 것'.땀이 흐르는 것이 두려워 섣부르게 발목 양말이라도 신게 되는 순간,애써 도전한 스타일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이때 가방은 길게 늘어진 숄더백이 제격이다.
우리가 알아둬야 할 마지막 키워드는 바로 팬츠의 '길이'다. 지금까지 남자들이 주로 입는 반바지 길이는 대개 무릎을 가리는 버뮤다 팬츠이거나 무릎을 살짝 드러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불황에는 치마가 짧아진다'라는 패션계 속설이 있듯 남성의 쇼트 팬츠 역시 극단적으로 짧아지고 있다. 남성이 탄탄한 허벅지를 드러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가 온 것이다.
'에르메스''루이비통' 등 고급 브랜드는 물론 내셔널 브랜드조차 반바지 길이를 짧게 마무리하고 있다. 옷장 속에 굴러다니는 반바지 길이가 어중간하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반바지 끝단을 접어 올리는 '롤업' 스타일링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으니까. 이러한 스타일은 좀 더 캐주얼한 스타일을 내고자 할 때 매우 유용하다. 요약하자면,여름시즌 반바지를 멋지게 입는 것은 몇 가지 규칙만 지키면 되는 무척 쉬운 일이다. 우선 마음가짐이다. 반바지를 외출복으로 여겨야지,절대 편하게 입는 실내복으로 폄하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마치 봄,가을에 차려입듯이 상의를 드레스업하고 맨발로 플랫 슈즈를 신어주면 되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 입는 반바지는 결코 시원해지기 위해 입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멋을 내기 위해' 도전하는 패션 아이템인 것이다.
/패션 칼럼니스트 · '데이즈드 & 컨퓨즈드' 수석 패션에디터 kimhyeont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