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근의 史史로운 이야기] 匹夫의 정치, 大人의 정치

"초왕(楚王)이 구정(九鼎)의 대소경중을 물었다. 주(周)의 왕손이 대답했다. '천자가 되고 못 되고는 덕행에 달린 것이지,세발 솥의 무게와는 무관하오(在德不在鼎).' 그러자 초왕이 말했다. '그대는 구정을 두고 으스대지 말라(子無阻九鼎).그런 건 우리가 가진 무기의 일부만 녹여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 ―<사기 초세가(楚世家)>

여기 나오는 초왕은 중국 춘추시대 초의 장왕(莊王 · 재위 기원전 614~591년)이다. 구정은 한낱 솥이 아니라 하(夏) 이래 중원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보물인데,초 장왕이 '세발 솥의 경중을 물은(問鼎)' 사건은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젊은 군주의 옹골찬 포부를 드러낸 유명한 장면이다. 그는 과연 남쪽 오랑캐(南蠻)라고 멸시받던 초를 춘추오패(春秋五覇)의 강대국으로 만든 성군으로 칭송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통 크고 호방한 일화들을 숱하게 남겼는데, 이 덕분에 춘추전국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특히 그가 보여 준, 일신의 이익보다 인간의 의(義)를 중요시한 대인(大人) 정치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대목들이다.

그는 즉위할 때부터 남달랐다. 왕이 되고 3년 동안 정치는 아예 내팽개쳤다. 밤낮으로 여인들 품에 살면서 '나를 간(諫)하는 자는 죽음을 각오하라'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 오거가 나섰다.

오거 : 수수께끼를 하나 내겠습니다. 새가 3년 동안 날지 않고 울지도 않으니,무슨 새일까요?장왕 : 3년을 날지 않는 것은 한 번 날매 하늘로 치솟고자 함이요,3년을 울지 않는 것은 한 번 울매 세상을 놀라게 하려는 것이다(三年不蜚, 蜚將沖天,三年不鳴,鳴將驚人).네 뜻을 알겠으니,살려 준다.

바로 음락(淫樂)의 자리를 털고 일어난 장왕은 과연 비상을 위해 3년을 웅크린 붕새와 다르지 않아, 금방 중원의 강자로 부상했다. 제후국들을 차례로 토벌하면서도 한 번도 왕도(王道)를 소홀히하지 않았다.

"장왕이 정(鄭)을 공격했다. 석 달간 포위를 풀지 않자 정의 양공(襄公)은 예법을 제대로 갖추어 항복하면서 백성을 위해 사직만은 지켜 달라고 탄원했다. '군주가 이토록 자신을 낮추니 백성 또한 믿을 만하다. 이런 나라의 대를 끊을 순 없다(其君能下人,必能信用其民,庸可絶乎)!' 장왕은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과 강화했다. "장왕은 연이어 강대국인 진(晉)과 싸워 대승했다. 적의 시체를 쌓아 올려 전승기념탑(京觀)을 만들자는 건의가 있자 장왕은 단호히 물리쳤다.

"무(武)는 싸움을 멈추게 한다는 뜻이다. 나는 병사들의 뼈를 들판에 흩고 무력으로써 제후들을 위협했으며 남의 위기를 틈타 이익을 얻었으니 무의 7가지 덕(七德) 가운데 하나도 이룬 것이 없다. 하물며 경관이란 것은 패자(敗者)의 사악함을 징계하자는 것인데, 진의 백성이 왕의 명령을 지키고 충성을 다하다 죽은 것을 생각하면 어찌 그것을 세운단 말인가? 불가하다. "

그는 죽기 3년 전 마지막으로 숙적인 송(宋)과 일전을 펼치는데, 초의 사신을 죽인 것을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송이 사신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한 왕은 바로 옷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시종이 급히 뒤따라 나가 궁문에 이르러 신발을 신기고, 궁문을 지나 검을 채웠으며, 고개를 넘어서야 간신히 수레에 태웠다. "―<춘추좌전>

포위 공격이 다섯 달이나 계속됐다. 송의 대부가 몰래 와서 '성 안의 백성이 자식을 서로 바꿔 먹고 해골을 쪼개 땔감으로 쓰는(易子而食, 析骨而炊)' 참상을 전하고 강화를 요청했다. '너야말로 의인이다!' 장왕은 그를 칭찬하고 바로 포위를 풀었다. 기록에는 두 나라가 이렇게 맹서했다고 전한다.

"나는 그대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그대도 나를 속이지 말라(我無爾詐,爾無我詐)."짧지만 비범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내용이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나도 이렇게 하겠다'는 요새 위정자들의 어법과는 정반대다. 필부(匹夫)의 정치와 대인의 정치가 이만큼 다른 것이다.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