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고곤의 선물'‥용서도 복수의 수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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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환ㆍ서이숙 환상 연기진정한 용서는 복수인가. 비극의 연극적 힘을 보여준 연극 '고곤의 선물'이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재공연 중이다. 21일까지 공연되는 이 작품은 이기적인 남편에게 희생된 아내의 후회와 용서,테러리즘에 대한 예언,연극의 위축에 대한 노작가의 외침 등 다중적 읽기가 가능한 연극이다. 특히 올해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정동환의 넘치는 에너지와 서이숙의 폭발적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값진 무대라는 평가다.
'고곤의 선물'은 46세의 천재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정동환)이 절벽 아래로 떨어진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남편을 잃어 슬픔에 빠진 미망인 헬렌(서이숙)에게 연극학자라는 필립 담슨(박윤희)이 찾아와 "나는 죽은 에드워드의 아들이고,아버지의 평전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헬렌이 회고하는 과거가 이 연극의 전체를 꿰뚫는다. 죽음마저 복수의 한 방법이었던가. 미망인 헬렌은 평전을 쓰겠다는 의붓아들을 위해 남편과의 만남부터 불화,극작가인 남편의 성공과 추락 과정을 회고해 나간다. 추락사한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Damson).본인 스스로 '저주받은 아들(damned son)'이라고 말할 만큼 세상과 적대적이다. 예술에 심취했던 남편은 현실적인 문제들은 제쳐놓고 연극에만 몰입한다. 헬렌은 의붓아들 필립에게 아내로서의 숨은 욕망과 증오를 토해낸다. 그녀는 결혼 생활 내내 신화 속 인물의 대역을 해내며 남편이 쓰는 희곡에 예술적 영감이 되지만,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것에 점점 두려움을 느낀다.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에게 이렇다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남편의 죽음을 맞닥뜨린 그녀.이 과정에서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풀려나간다.
이쯤에서 극은 에드워드의 죽음조차 거대한 복수극의 한 토막이었음을 증명한다. 헬렌은 평전을 쓰게 해 에드워드의 파괴적 성향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지만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아들 필립은 집필을 거부한다. 극의 막바지에 관객은 용서가 곧 복수가 되는 순간과 만난다.
연극 '고곤의 선물' 무대는 절제된 백색 톤이 주를 이룬다. 폭력성이 고조되면 흰 무대는 붉은 조명으로 물들고,하얀 대리석 바닥은 붉은 포도주와 피로 얼룩져 강렬한 미장센을 만들어낸다. 모던 발레와 마임을 절충한 신체극 코러스도 신선하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