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 2위 '왕언니' 김희정 "불황 찬바람에 독기 품었죠"

연습장 운영 등 제2인생 준비도
"저 선수가 누구야.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데 잘 치네."

지난 19일 제주에서 끝난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 에쓰오일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에서 노익장(?)을 과시한 선수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프로 18년차인 김희정(38 · 트레비스).그는 대회 최종 라운드 최종홀에서 1.5m 거리의 파 퍼트를 놓치는 바람에 10년 만에 잡은 우승 기회를 놓치고 2위를 차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8년 골프클럽을 잡은 김희정은 1992년 8월 프로로 전향한 뒤 1993년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94년 SBS최강전,휠라여자오픈 등에서 우승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1999년 LG019여자오픈을 끝으로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우승 욕심이 없었어요. 원하는 샷이 구사될 때 느끼는 뿌듯함 자체가 좋았죠.하지만 서른 살이 넘어서부터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상금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

김희정은 성적 부진으로 프로 생활 17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연말 시드전에 출전했다. "투어 대회 참가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갑자기 몰아친 글로벌 경제 위기로 골프레슨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어 다시 클럽을 들었습니다. "

그는 지난달 초 한국여자오픈(경북 경주)을 시작으로 KB스타투어(전남 함평) 등 6개 대회에 연속 출전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직접 운전해 전국을 누비고 숙소와 캐디를 구하는 등 모든 일정을 혼자 소화하기 때문에 체력이 달릴 만도 하다. "발바닥에 통증(족저근막염)이 있어 오래 서 있으면 피로가 심해요. 예전에는 자고 나면 멀쩡했는데 대회마다 출전하다 보니 손에 힘이 빠지고 하체 고정도 쉽지 않네요. "그런 그가 올해는 상금랭킹 11위(5400만원)를 달리고 있다. 국내 투어 선수 중 나이로는 이오순(47)에 이어 '넘버2'인 김희정은 '제2의 인생'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 "당초 45세까지 현역으로 뛰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투어에 나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연습장을 운영하고 스케줄이나 체력을 봐가며 대회에도 적당히 나가면서 골프 관련 일을 찾는 게 앞으로의 계획입니다. "

제주=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