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주연 남궁은숙 "죽을 용기로 살아가면 훨씬 더 행복해질 걸요"

'죽기 전에 해야할 몇가지 것들'(감독 박성범)은 국내 최초의 1인극 영화다.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시도됐던 1인극을 영화에 도입한 셈.수연 역으로 주연에 데뷔한 남궁은숙(26)은 여기에서 83분간 '나홀로' 출연해 자살을 앞둔 젊은 여성의 심리를 보여준다.

흥행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발랄하면서 성깔 있는 핸드볼 선수를 열연한 이후 정반대 캐릭터로 등장했다. 2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자살을 생각해봤을 거예요. 시나리오를 보니 이런 심경을 1인극으로 풀어냈더군요. 신선한 소재에 단박에 끌렸어요. 1인극은 외국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동반 출연자 없이 수연의 내면 심리를 독백과 표정만으로 연기하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

그녀는 이 영화에서 거의 모든 장면에 혼자 등장한다. 거리를 걷는 장면에서는 스쳐지나가는 몇 사람이 멀찌감치 보인다. 수면제를 사는 장면에서도 약국 외관만 눈에 들어온다. 전화 통화를 할 때에도 상대방은 등장하지 않는다. 금붕어와 애완견이 대화 상대일뿐이다.

"죽음을 앞둔 인물을 연기하느라 촬영 내내 우울했어요. 그러나 자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기 위해 숨막힐 듯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게 아니라 자살 하루 전 일상을 가벼운 심경으로 풀어냈어요. 다른 영화들처럼 자살을 즉각 실행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죽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요. 때로는 발상이 엉뚱하기도 하고요. "수연은 다리 위에 가서 막상 떨어지려고 하니,싸늘한 강물이 너무 차가울 것만 같다. 익사한 사람은 살기 위해 돌멩이라도 붙들려 하니까 손톱이 없다는 얘기도 불쑥 떠오른다. 백합꽃 향기를 오래 맡으면 죽는다는 데 진짜일까? 복어의 독을 먹기 위해 주방장에게 남은 음식을 싸달라고 해볼까? 상념은 꼬리를 문다.

"자살을 생각한 수연에게는 일상에서 친숙하던 물건조차 흉기로 변해요. 장도리 등 공구세트,헤어드라이기,지하철,달리는 차량,수면제….심지어 향기조차 독가스가 될 수 있어요. "

죽음에 관한 이처럼 많은 생각들은 역설적으로 죽는 게 사는 것보다 어렵다는 점을 일깨운다. 자신의 죽은 모습을 상상하며 사진을 찍어보니,죽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여겨진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사는 게 낫다는 거지요. 특히 전날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활하다 자살한 최진실씨를 떠올려보면 제 자신을 포함한 배우들에게는 각별한 얘기예요. 누구나 나름대로 고통을 지녔겠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해요. 극중에서처럼 금붕어 밥도 줘야하고,애완견 생일도 챙겨줘야 하잖아요. "

영화에 수연의 자살 동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거예요. 삶이 지겹고 평탄하지 않아 자살 충동을 느낀 관객들이 각자의 개인적인 상황을 주인공에게 대입해 보라는 의미죠."남궁은숙은 앞으로 스타보다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에도 배우가 극중 캐릭터에 동화되는 훈련인 '메소드' 연기를 위해 개인 레슨을 받고 있다. "연기자가 캐릭터와 동일시되기 위해 특정한 상황에서 개인의 경험을 떠올려 감정이입하도록 연습하는 거죠.저는 아직 촬영장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잘 못해요. 이런 공부를 하다보면 언제 어디서든 감정을 꺼내보일 수 있답니다.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