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법질서 회복 전도사 나선 김성호 '행복세상' 이사장

"기업들 법대로만 하면 사업할수 있게 규제 풀어야"
김성호 재단법인 '행복세상' 이사장(59)은 노무현 정부 때 1년간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선 첫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변호사 개업을 하거나 로펌에 가면 전관 예우 등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이력이다. 그런 그가 무보수 명예직인 공익재단법인 행복세상 이사장으로 컴백했다. 2007년 12월 법무부 장관 퇴임 후 설립했다가 국정원장 임명으로 잠시 떠났던 자리다.

그는 공직생활 30여년 내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뭘까'란 화두를 품었다고 했다. 특수통 검사로 잔뼈가 굵어서일까. 그가 내린 처방은 '법질서 회복'과 '친기업적인 법률환경 조성' 두 가지다. 법보다 떼법이 먹히는 나라에선 국민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불필요한 법률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게 해야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국민 행복지수가 올라간다고 진단했다. ▼법무부 장관 출신들은 변호사 개업을 하거나 대형 로펌에 가는 경우가 많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 검사장급 이상은 퇴직 후 1년 이상 변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이런 내용을 법으로 만들려고도 시도했다. 현직 후배들이 변호사 선배의 얼굴을 봐 형량을 낮춰 주는 '전관 예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상급자였던 사람이 하급자에게 청탁하는 듯한 모습이 보기 좋지 않고,이런 관행은 검찰과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사적인 이해관계로 얽혀 공정성을 잃어버리면 짠맛을 잃은 소금이나 마찬가지다. "

▼왜 '행복세상'인가. "참여정부 법무장관 시절 모토가 '법과 원칙이 살아 있는 행복국가 건설'이었다. 법질서를 강조하고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참여정부 코드와는 잘 맞지 않았다. 개각 얘기가 나올 때마다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다 결국 1년 만에 하차했다. 시간이 모자라서 못한 일이 많다.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주변 사람들과 의논해 봤다.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재단을 만들었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희범 전 무역협회장,김기문 중기중앙회장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힘을 보태 줬다. "

▼법질서가 회복돼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갈등이 생기면 법을 안 지키려 한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결사적으로 싸운다. '헌법 위에 떼법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노사 갈등이나 이념 갈등이 특히 그렇다. 이래선 국민이 편안할 수 없다.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도 없다. 외국인들이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불법 폭력시위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법과 원칙이 반드시 회복돼야 한다. "▼떼법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50년 전 법무장관 어록집도 지금처럼 법과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50년간이나 고쳐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유는 우리 역사와 관련이 깊다. 일제 식민지,6 · 25전쟁,군사 독재 등을 거치며 우리 국민에겐 저항 유전자가 생겼다. 저항하는 것이 선이자 미덕이었다.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젠 한국도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민주화됐다. 법과 질서를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저항 문화는 없어지지 않았다. 도로를 점거하고 각목이나 죽봉을 휘두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시대착오적인 행동이다. 국가 지도층의 부패도 큰 원인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윗사람들이 깨끗하지 못하니 국민들이 법을 무시한다. 사회 지도층에 대한 사정을 강화해야 한다. "

▼떼법에 대한 처방은."장관 재임 시절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다. 잘못하면 반드시 벌을 준다는 거다. 어떤 땐 벌을 주고 어떤 때는 벌을 안 주면 효과가 없다. 큰 잘못에는 큰 벌을,작은 잘못에는 작은 벌을 꼭 줘야 한다. 한 사람이 법 위반을 하면 잡고,단체로 위반하면 봐 주고 해서도 안 된다. 일관된 법 집행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게 완벽하지 않다. 불법 집회를 보자.시위 현장에서 붙잡힌 사람들은 처벌을 받지만 안 붙잡히면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위 사태가 끝나면 더 이상 추적하지 않는다. 끝까지 추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정권에 따라 법 적용 원칙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선 안 된다. 법질서 회복은 하루 아침에 되지 않는다.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나무를 심는다고 당장 그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갖고 정성스럽게 가꾸어야 나무가 크고 그늘도 넓어진다. 이사장 임기 4년 동안 나무 한 그루를 가꾼다는 심정으로 매진할 작정이다. "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펴게 된 계기는.

"1979년 검사로 임관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기업 비리를 많이 수사했다. 1981년 박영복씨 부정대출 사건을 시작으로 이철희 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영동개발진흥과 조흥은행의 금융부정 사건,명성그룹 사건 등의 수사에 참여했다. 수사를 하다 보니 기업들만 욕할 수 없었다. 비자금을 만들어 로비하지 않고는 사업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법대로만 하면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무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기업 활동을 옥죄는 불필요한 규제들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당시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던 이중대표소송 법안에 제동을 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잘못에 대해 모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손발 다 묶어선 기업 활동을 할 수 없다. 친기업 정책의 핵심은 규제 완화다. 규제를 과감히 풀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참여정부 시절 기업 프렌들리를 외쳤으니 마찰도 적지 않았을 텐데.

"골고루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가진 사람들 것 빼앗아서 없는 사람들 나눠 주는 방법,그리고 전체 파이를 키워 나눠 먹는 방법이 있다. 후자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경제력을 키우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전자의 방법은 기업의 의욕을 꺾고 결국 나라 전체를 거지로 만든다. 그래서 참여정부 시절 좀 부딪친 측면이 있다. "

▼'행복세상'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나.

"법질서를 회복하고 불필요한 기업 규제를 푸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 방향으로 가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연구한다.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컨퍼런스 등을 열어 공론화하고,정부 측에도 제도화를 요청할 계획이다.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연구 결과는 아무 의미가 없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찰 쇄신 문제가 거론되는데.

"기소독점주의는 문제다. 기소 여부를 검찰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 큰 죄를 지은 사람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수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플리바겐(증언을 대가로 감형해 주는 것)도 도입됐으면 한다. 구속 요건도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보는지.

"피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저인망식 수사를 한 것은 문제 소지가 있다. 수사도 지나치게 장기화됐다. 다만 검찰의 입장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기 힘들다. 참여정부 시절 인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구속하거나 참고인 조사하는 게 어렵게 됐다. 위증을 해도 대책이 없다. 게다가 정치권에선 툭하면 특검을 하겠다고 한다. 특검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검사들은 어떤 수법을 써서라도 사건을 해결하려고 든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검사들 입장도 딱하다. "

▼천막 공민학교를 다니던 판자촌 소년이었다. 성공 비결은."인생 모토는 열정과 순수다. 그래서 '처염상정(處染常淨)'과 '한고청향(寒苦淸香)'이란 한자 성어를 좋아한다. 처염상정은 '연꽃은 더러운 물에 있어도 깨끗함을 유지한다'는 뜻이고,한고청향은 '매화는 추운 겨울의 고통을 겪어야 맑은 향기를 낸다'는 의미다. 힘든 고비마다 이 두 마디를 가슴에 새기며 매진해 왔다. "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