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백악관엔 있고, 청와대엔 없는것

'2인자'가 자주 들락거린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워싱턴 백악관 뒤편으로 세 블록 떨어진 데 위치한 레스토랑 보비 밴스 스테이크하우스의 매니저인 심킨스 존씨는 기자에게 2인자 목격담을 뉴스가 되겠느냐며 무덤덤하게 들려줬다. 그는 백악관 2인자가 집권 민주당은 물론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도 초청해 프라이빗 룸에서 식사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2인자가 즐겨찾는 곳으로는 미 하원 체육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곳에서 매일 아침 운동하면서 주요 법안에 대한 양당 의원들의 입장 등 의회 정보를 수집하고 다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인자로 통하는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49)을 두고 하는 얘기다. 민주당 하원의원(일리노이주)인 그는 하원 의장직을 희망하다가 오바마 대통령의 부름을 받자 3선 의원직을 포기하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참모를 지낸 구 시대 인물이었으나 오바마는 그의 돌파력과 대의회 정치 협상력을 높이 사 발탁했다. 과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 발목 잡혀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클린턴 참모였던 이매뉴얼은 이들을 끝까지 설득해 NAFTA 의회 비준을 이끌어냈다. 백악관과 의회 경험이 풍부한 이매뉴얼은 두 살 아래인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메신저와 협상가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보험 개혁 법안,기후변화 법안 등 오바마가 의회를 상대로 벌여놓은 개혁 입법의 추진에는 어김없이 이매뉴얼이 나서 물밑작업을 벌인다. 이매뉴얼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팽팽히 맞서는 국면이면 양당의 온건 중도파 의원들부터 찾아내 보비 밴스 스테이크하우스,백악관 웨스트윙 사무실의 한적한 뒤뜰로 초대한다.

공화당 의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오바마 정부가 제출한 기후변화안에 반대하나 내 견해를 들어준 것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프레드 업톤 공화당 의원은 전했다. 그는 보비 밴스에서 이매뉴얼과 식사를 같이한 사이다. 이매뉴얼의 발품이 한몫해 기후변화 법안은 지난 26일 하원에서 통과됐다. 민주당 의원 44명이 이탈했지만 공화당 의원 8명이 찬성표를 던진 덕분이다.

그런가 하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매뉴얼의 존재감과 그에 대한 신뢰를 독특한 방식으로 공개해 힘을 실어준다. 이매뉴얼은 정치인들이나 기자들의 폭소를 터트리게 하는 '오바마표 유머'의 단골 메뉴다. 지난 5월 '어머니 날(Mother's Day)'을 맞아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였다. 오바마는 "이매뉴얼이 Mother 뒤에 Day란 단어를 붙여 말하는 데 익숙지 않아 어머니 날을 기념할 수 없다"며 농담을 했다. 입이 걸기로 유명한 이매뉴얼이 걸핏하면 Mother로 시작하는 욕설을 해대는 습관을 빗댄 것.백악관과 의회 간 소통을 충실히 해내는 이매뉴얼의 노고를 에둘러 칭찬하는 화법인 셈이다. 이매뉴얼 비서실장 스토리를 새삼스레 다시 거론한 건 다름이 아니다. 정부와 사사건건 불협화음인 집권당,툭하면 길거리로 나가는 야당과의 소통력 · 협상력 부재에 아직도 허덕이는 청와대의 처지가 딱해서다. 여의도 정치에 혐오감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내 진정성을 몰라줘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에게 '청와대의 이매뉴얼'을 찾아보라고 주문한다면 지나칠까.

워싱턴=김홍열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