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현대車 노조 '살려면 버려'

강경일변ㆍ계파싸움은 자멸의 길, 신임집행부 고통분담 모습보이길
현대자동차가 갈등적 노사관계로 또다시 혼란스럽다. 지난달 16일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이 임기 도중에 전격 사퇴했기 때문이다. 노조지부장이 사퇴하는 경우 노조의 다른 임원들도 자동적으로 사퇴하는 것으로 규정한 노조규약 때문에 전 집행부가 사퇴했고 결과적으로 올해 임단협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101년 역사의 미국 GM이 해체되는 등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지각변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가운데 노노 갈등으로 현대차 지부장이 중도에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을 아끼는 많은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100여년간 세계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 온 GM의 파산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주는 함의가 매우 크다. 17개 공장 폐쇄,100만대의 생산능력 감축,2만명 이상의 감원 등으로 귀결된 GM의 구조조정은 부단한 혁신과 노력이 없이는 세계 초일류기업도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GM은 장기적 비전이 없는 경영진이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큰 문제의식없이 수용했다 낭패를 봤다. 단적인 예로 자동차 한 대 판매금액 중 전 · 현직 직원들에 대한 의료비 지원이 1500달러까지 상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뒤늦게 복지혜택 축소 등 대책을 마련했으나 이미 버스가 떠난 뒤였다.

GM의 파산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가 되고 있다. 중소형차에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세계적 경기침체에도 선전하고 있다.

환율효과 등으로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서는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으며,최근 JD파워사의 신차 품질조사에서는 도요타와 혼다를 제치고 일반 브랜드로는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무적인 소식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우려스럽기만 하다. 노조지부장의 사퇴로 임단협이 중단되는 등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하겠지만 현대자동차 노조는 새로운 집행부 선출과 함께 과거의 관행에서 환골탈태해 거듭나야 한다. 우선 10여개 계파로 찢어져 벌이는 정치싸움은 그만둬야 한다. 또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나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은 외면한 채 무리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악습도 타파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기업으로 평생고용을 보장해 온 도요타자동차도 인력조정을 하는 위기 상황에서 현대자동차 노조는 올해 임금교섭에서 8만7000원의 임금인상과 당기순이익 30%의 성과급을 요구했는데,고통분담에 동참하고 있는 많은 다른 기업의 노조와 같이 임금동결을 사측에 먼저 제안하는 것이 우리나라 최대 노조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올해 현대차 임단협 결과는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9월 시행예정인 주간 2연속교대제의 세부사항을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간 2연속교대제 실시때 노조가 요구하는 '실질임금 삭감 없는''노동강도 강화없는''고용불안 없는' 소위 3무(無)원칙이 실현되면 임금이 20% 인상되고 생산물량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비용이 소요된다. 새로이 출발하는 현대차 지부는 대안없이 무리한 주간 2연속교대제 실시를 주장하기보다는 회사의 경쟁력과 근로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같이 고려해 교대제 변경을 해야 한다. 새로운 집행부의 선출이 강경일변도의 투쟁지향적 노동운동을 탈피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현대차노조는 한 · 미FTA 반대 파업 등 정치적 파업의 선봉에 서서 우리나라 노사관계 불안의 진원지가 돼 왔다. 새로운 집행부 출범과 함께 현대차 노조는 국가 경제를 생각하고 보다 합리적으로 주요 현안을 풀어 나가야 한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ㆍ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