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종이 MB에 주는 3가지 가르침

잠시 멈춰 국민 목소리 세세히 듣고, 인재에 일 맡겨 성과낼때 불신 걷혀
몇년 전,한 사람이 어떤 국회의원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길가에서 봉변을 당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국회의원들이 그런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대가 있을 때 그런 미움도 생기는 법인데,정치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버린 지금 그런 무모한 일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역시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와'녹색뉴딜'등 정부의 모든 사업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다 보니,국책사업 자체가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회와 행정부,그리고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공공영역 대부분이 불신을 받는 '신뢰의 그라운드 제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푯대를 잘 세우는 게 중요하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역사 속 성공 사례를 되돌아보면서 어디를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모색해 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그러면 불신의 안개에 휩싸인 우리나라의 정치가 푯대를 삼을 만한 역사적 사례는 누구인가. 역시 세종이다. 그가 비단 한글창제를 비롯한 많은 업적을 이룩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정치하는 방식,즉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가며 좋은 성과를 거둔'한국형 리더십'의 원형으로서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418년의 즉위교서,즉 "어짐을 베풀어 정치를 펴겠다(施仁發政)"라는 세종의 취임사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요 끝이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조선조의 개창 이후 부왕 태종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공신과 외척의 도전,그리고 왜구와 여진족의 침입 등을 선제적 공격으로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여전히 신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각종 유언비어로 나라 안은 늘 뒤숭숭했다.

이때 세종이 한 일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멈춰 서서(止) 어느 길을 택하는 게 좋을지를 판단하는 일이었다. 부왕 태종으로부터 "멈춰 서는 법을 안다(知止)"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세종은 장애물이 생겼을 때 무모하게 밀어붙이지도,그렇다고 그 장애물 때문에 하던 일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밀어붙임과 포기함,그 사이에 멈춰 서서 고도의 평정심을 가지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곤 했다.

둘째,세종은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노력했다(聽)."백성들은 비록 어리석으나 지극히 신명(神明)한 존재"라고 보았던 그는,그 동안 다른 왕들과 관리들이 그 어리석음에 가려서 보지 못했던 신명한 소리를 듣기 위해 귀 기울였다. 그는 동시에 경연(經筵)과 같은 세미나식 국정회의를 자주 열어 지식인들과 관료들이 가진 아이디어와 경험을 청취했다. 백성들의 목소리와 사대부들의 말을 함께 들음으로써 인기영합주의에 빠지는 것과 민심을 외면하는 잘못 모두를 극복했다. 셋째,그는 유능한 관료들에게 일을 맡겼다(任)."의심스러우면 맡기지 말고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신념에 따라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경륜이 있는 사대부들에게 일을 맡겨 정책을 성취시키게 했다. 관료제 개혁안을 낸 허조에게 인재검증체계를 수립하게 하고,함경도 감사로서 기근구제에 성공한 안순에게 11년 4개월이나 호조판서를 맡게 해 국가재정을 잘 운용하게 한 사례가 그것이다.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두려워하여 술렁거려서도 안 되지만,두려워하지 않아 방비를 잊어서도 안 된다"는 세종대왕의 어록을 인용했다. 두려움을 갖되,지혜를 모아 일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것인데,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멈춰 서서,각계 각층 국민들의 목소리를 세심히 듣고 가려내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인재에게 일을 맡겨 성과를 거둘 때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불신의 안개도 하나씩 걷히지 않을까.

박현모 <한국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