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갈길 먼 한국연구재단

과학과 인문 ·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개발을 통합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닻을 올렸다. 과학재단을 비롯 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등 세 곳을 통폐합한 대형 기초연구지원기관이 우리나라에서도 마침내 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1979년 학술진흥법이 만들어진 이후 인문과 과학 분야로 나뉘어져 각각 연구비를 지원해오던 국가 연구개발의 기본 틀이 30년 만에 통합체제로 바뀐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연구개발 지원 규모를 비롯 조직 운영 직급 보수체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도 한국연구재단은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하다. 올해 연구지원사업 규모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21.1%인 2조6081억원에 이르며,기초원천연구 비중확대 방침에 따라 2012년에는 4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유사 기능을 통폐합해 대부서 중심 체제로 전환했다. 특히 연구사업관리전문가,이른바 PM(Program Manager) 중심의 전문 조직으로 재편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연구 기획에서부터 진도관리,성과관리 등으로 이어지는 연구사업의 모든 과정을 PM을 통해 진행토록 했으며,본부장과 단장 등 21명 전원을 PM으로 임명하고 280여 명의 비상근 PM을 활용키로 했다. 이들은 연구과제 선정과정에 참여하는 한편 일부 사업의 경우 과제를 직접 선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물론 연구재단 통합과 운영체계 개선 등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무수한 연구 과제를 제대로 선별하고,나아가 창의적 연구 과제를 제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통합 연구재단의 출범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총괄 조정기능을 통해 연구개발 분야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기초연구 및 관련 법제를 정비해 투자 성과를 극대화해나겠다는 뜻이다. 학문 간 균형적인 발전을 꾀하는 것은 물론 대학과 연구기관 간 협력분위기를 조성하고 차세대 융합기술분야 전문가를 양성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연구재단이 2012년까지 최소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5개 대학을 세계 상위 100개 대학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의 장기 비전을 제시한 데서도 이를 잘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연구재단은 미래를 향해 첫 걸음을 내디딘데 불과하며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무엇보다도 연구과제의 선정과 평가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PM제도를 이른 시일 안에 뿌리 내리도록 하는 일이 시급하다. 과학자 등 전문가들이 PM을 선출하고,PM에게 3년의 임기를 보장해 주고 있는 스웨덴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연구행정 시스템을 간소화하고 연구자의 편의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각종 지원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가야 할 것이다.

선진국을 따라잡는 기술 모방에서 벗어나 '연구개발 강국'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학자 등 연구 현장의 노력과 더불어 정부와 연구자 사이의 지원 역할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연구재단이 기초연구 법제 정비 등을 통해 인문사회 분야와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 연구지원 기관으로 하루빨리 거듭나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통합 연구재단 출범이 우리나라 기초 학문발전에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

김경식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