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노프 필리핀 공장가보니… 무색·무취·무미 비결은 10번의 여과과정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인근 라구나 테크노파크 산업단지.

이곳에는 세계 최대 주류메이커인 디아지오의 동아시아 지역 보드카 생산거점인 디아지오 로사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스미노프 보드카와 저알코올 혼합음료(RTD)인 '스미노프 아이스','스미노프 뮬' 등이 모두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무색 · 무취 · 무미의 순수함이 생명인 보드카 제조의 핵심은 증류와 불순물의 여과 과정이다. 밀 보리 호밀 감자 옥수수 등의 곡물을 발효해 만든 주정을 미국에서 들여와 이곳에서 세 번의 증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후 발효 과정에서의 불순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작나무를 1000도 이상 고열로 태운 활성탄을 사용해 10번의 여과 과정을 진행한다. 이 공장의 책임자인 티르소 안토니오 페레자 이사는 "10회의 여과 과정을 거치는 보드카는 스미노프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블렌디드 위스키가 보통 2000??의 불순물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스미노프 보드카는 불순물이 5??에 불과한 것도 이같이 정밀한 여과 과정의 영향이다.

스미노프 보드카의 병 레이블에는 3종류의 숫자가 적혀 있다. 병 하단의 로마 숫자 'Ⅲ'과 'Ⅹ'는 각각 3번의 증류와 10번의 여과를 의미한다. 또 '스미노프' 브랜드 바로 밑의 '№21'은 21번째 레시피라는 뜻이다. 흡사 '샤넬 №5'가 코코 샤넬이 5번째 레시피를 최종 선택한 데서 붙여진 이름처럼,스미노프의 №21 역시 21번째 제조방법이 제품화됐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스미노프'의 창립자는 러시아의 양조업자 표트르 스미노프다. 그는 제정 러시아 때 한 박람회장에서 차르 일가에게 곰이 보드카를 서빙하는 묘기를 보여준 덕에 보드카의 황실 납품권을 따내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나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그의 후손들이 프랑스로 망명한 뒤 몇 번의 손바뀜을 거쳐 1997년 디아지오 계열 브랜드가 됐다.

마닐라=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