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다이어트 열풍은 사회병리학적 현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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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출간한 백영옥씨"뚱뚱하다는 것에 엄청난 죄책감을 가진다는 건 일종의 질병"이란 말에 정치적으로 동의해도 "외모지상주의요? 그게 대세라면 당연히 따라가야죠"란 말에 심정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모순을 느껴본 사람에게 소설가 백영옥씨(35 · 사진)의 두 번째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문학동네)은 뼈아프다.
소설의 주인공 연두는 뚱뚱한 몸을 '직업병'이라고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요리사다. 그런데 3년 사귄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 후 옛 여자친구에게 돌아갔다는 소문이 날아들자 연두의 인생은 '삼류 추리소설 속 오타'로 전락한다. 폭식을 거듭하며 순식간에 몸무게가 0.1t에 육박하게 된 연두는 방송작가 친구의 권유로 리얼리티 다이어트 방송 프로그램 '다이어트의 여왕' 출연을 결심한다. 엄청난 감량에 성공한 연두,그러나 그는 과연 행복을 손에 넣은 걸까?백씨는 "다이어트란 사회병리학적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현대 여성들에게 그들의 진짜 육체는 정답이 아닙니다. 용납할 수 없는 비현실이지요. 오히려 나오미 캠벨 같은 모델의 몸이 정답이고 현실이 됩니다. "
다이어트가 사회병리학인 이유에 대해 백씨는 간단한 예를 들었다. "다이어트는 아주 감정적인 행동이에요. 남편의 외도,부모의 사망 등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여자들은 급격한 체중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집단적으로 살을 뺍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모두 다이어트를 하고 취직하기 위해 모두 다이어트를 하잖아요. "
그렇게 개인의 취향과 선택은 사회의 취향과 선택으로 포섭된다. 백씨는 "식당에서 후식으로 주는 박하사탕을 칼로리 때문에 안 먹다보니 자신이 원래 박하사탕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처럼,여자들은 사회적 취향을 강요받다가 결국 그게 원래 자신의 취향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고 서글퍼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문제점을 깨달아도 별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백씨는 "뚱뚱해지느니 거식증에 시달리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우리의 진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면서 "나만 해도 음식 칼로리를 신경쓰며 '먹으면 살찔텐데'란 강박관념이 굳은살처럼 박혀 있다"고 설명했다. '다이어트의 여왕'에 출연하기 전 연두는 살찐 몸이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도,다이어트를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살을 죄라고 여기고 몸무게로 출연자들을 줄세우는 상황에서 연두 또한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에 집착하게 된다. 사회적 기준이 개인적 기준을 뭉개는 순간이다. 결국 트라우마가 생긴 연두는 건망증,미각이상,우울증 등을 동반한 거식증의 포로로 전락한다.
백씨는 소설을 쓰기 위해 거식증 환자들을 직접 만났다. 그가 목도한 현장은 우울했다. 겨우 8살인 어린 환자는 밥을 휴지에 싸서 몰래 버렸다. 살이 찔까봐 절대 의자에 앉지 않는 환자도 있었다. 백씨는 "거식증의 진짜 문제는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사랑하고 낫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이어트의 여왕》은 '뚱뚱한 여자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달콤한 거짓말을 속삭이는 칙릿(젊은 여성 독자를 위한 소설)이 아니다. '비정상적 몸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키자'고 선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 욕망의 정체는 무엇일까?'란 질문을 던질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엔 미분만 있고,적분은 없었다. 모든 걸 쪼개고 쪼개면 결국 그것은 0이 될 것이다. 우리가 꿈꿨던 건 어쩌면 실재감 없는 유령 같은 몸이었을지도 모른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