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GM짝 난 캘리포니아주

기업이 망하거나 정부 재정이 파탄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GM 패망은 무엇보다 강성 노조가 빚어낸 비용 부담 요인이 컸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연금 · 건강보험 비용 등으로 도저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GM 경영진은 악순환 고리를 끊지 못했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이런 저런 입법과정에서 노조 편에 설 때가 많았다. 일자리를 지킨다는 명분에서였다.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와 경영진의 무능,정치적 포퓰리즘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회사를 멍들게 한 것이다.

재정 파탄을 겪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정부도 파국을 향해 치닫기는 마찬가지다. 민간 기업이었으면 벌써 GM처럼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어야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경제규모로 세계 8위 수준이며 천혜의 관광자원과 함께 정보기술(실리콘 밸리) 엔터테인먼트(할리우드) 등 다양한 산업 기반을 갖춘 곳이다. 금광이 많아 '골든 스테이트'라고도 불린다. 이런 캘리포니아가 260억달러의 재정적자 늪에 빠져 단기어음(IOU)으로 연명하고 있다.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제 무급 휴가제를 실시하고 교도소를 제대로 운용할 수 없어 죄수들을 조기에 석방해야 할 정도다.

재정난 요인으론 먼저 부동산 시장 붕괴와 경기침체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멀리 보면 1978년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발의로 통과된 '제안(Proposition) 13호'가 재정 파탄의 전주곡이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제안 13호'는 부동산 평가금액의 연간 상승률을 2% 이내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주민들의 세부담을 덜기 위해 재산세 징수에 제한을 둔 조치다. 또 1982년에는 주민투표를 통해 주 상속세도 폐지했다. 1998년부터 자동차 면허 수수료를 단계적으로 낮춘 것도 연간 40억달러의 세수 감소를 초래했다. 2004년 인터넷 버블이 붕괴되자 다시 연간 수십억달러의 자본이득세 수입이 사라졌다.

재정난을 겪게 되면 씀씀이를 줄이고 세금은 올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제안 13호'는 주 의회가 세금을 올리기 위해선 주 상 · 하원의 3분의 2 찬성을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세금 인상을 포함한 예산안 통과가 무산돼 상황이 더욱 꼬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3년 취임한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공화당)가 세금 인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무책임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지나치게 관대한 공무원 퇴직연금제도도 문제다.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 주의 연금 관련 잠재 부채는 무려 2000억달러에 달한다. 연금을 관장하는 사람들은 GM의 전미자동차노조(UAW)처럼 또다른 노동귀족에 다름 아니다.

지나치게 앞서가는 환경규제 강화도 기업 경쟁력 및 일자리 상실로 이어졌다. 기업과 주민들은 '약속의 땅'을 버리고 먼지 바람이 부는 오클라호마나 텍사스 알칸사스로 속속 떠나고 있다.

기업과 사람들이 등지는데 세금만 올린다고 해서 돌파구를 찾을 것 같지 않다.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제도를 만들고 새 출발하는 방식의 포괄적인 시스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살길이 열린다. GM이 우량 자산만으로 새 출발했듯 말이다.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